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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삼성 디자인 씽크탱크 20년…'사디'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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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만 100여개

(서울=뉴스1) 허재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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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 논현동의 '사디' 디자인 학생들이 '제품 디자인 콘셉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News1


"이 아이템의 핵심은 버려지는 포장을 장난감 구성품으로 활용하는 데 있습니다."

"잠시만요! 논의 주제가 장난감인데, 포장에 치중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제품 가격만 오히려 더 비싸지는 건 아닌가요?"

"포장도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비용까지도 고려한, 바로 그 점이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포인트 입니다."

진지했다. 조금만 생각이 다르거나 궁금하다 싶으면, 질문은 여지없이 쏟아졌다. 이제 막 개강했지만, 여느 학원이나 캠퍼스에서나 볼 수 있는 새 학기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 논현동의 '사디'(SADI) 동관 6층 강의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된 '제품 디자인 콘셉트' 수업 분위기는 그랬다.

1896년에 설립된 미국 뉴욕 사립 미술대학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은 디자인계의 '하버드대'로 불린다. 미국 최초의 패션디자인 및 인테리어디자인, 광고 및 그래픽학과 등의 개설과 함께 예술보단 현실적이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수이, 도나 카렌 등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도 이 곳 출신이다.

사디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다. 하지만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비견될 만큼, 국내외 디자인 업계에서 사디의 명성은 화려하다. 50년 역사의 세계 3대(IF, IEDA,, 레드닷)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만 모두 103개(2013년 기준)에 달한다. 단일 교육기관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유수 대학에서조차 사디 벤치마킹에 나서는 이유다.

사디는 순전히 현실적인 양질의 디자이너 배출을 목적으로 삼성의 후원과 더불어 1995년3월 설립(3년제)됐다. 이건희 회장이 "21세기는 디자인 경쟁력이 기업 경영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디자인 혁명을 공표했던 시점이다. 올해 20년차로, 삼성전자 등 국내 산업계 디자인의 산파로 각인된 사디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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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 출신 디자이너들은 세계 유수 디자인 박람회에서 우수한 입상작을 많이 배출했다. 맨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마에서 프라이팬으로 변형 가능한 '컬링팬'(2013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편안한 착용감의 '깁스'(2013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적정량의 소금 섭취를 확인해주는 '소금통'(2013 IDEA 동상), 세탁물의 특성에 따라 간격 조절이 가능한 '빨래 건조대'(2013 IDEA 동상) (사진제공=사디)© News1


◇ 철저한 실무교육과 100% 토론식 수업방식

사디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철저한 실무 교육에 있다. 67명의 교수진 대부분도 현재 업계에서 활약 중인 현역 인사들로 구성됐다. 기본적으로 사디에선 현장 메커니즘과 직접 연결, 단순히 외관만 아름답게 만든 보여주기식 디자인은 용납될 수 없는 구조다.

디자인에 대한 논리와 철학도 분명해야 하고, 반드시 상대방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사디만의 필수 코스다. 수업을 100% 소수 정예의 토론 방식으로 고집하는 이유다. 전임 교수 1인당 학생 수 또한 15명에 불과하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나 패션디자인학과, 제품디자인학과 등 모든 학과에서 동일하다.

학사 관리 역시 깐깐하다. 정식 대학은 아니지만 사디의 졸업율은 60%에 불과하다. 안상옥 사디 인재개발센터 과장은 "디자이너로서 설득력 있는 작품(디자인) 구현 역량을 높이기 위해선 신랄하면서도 밀도 있는 토론식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야 하지만, 사디 졸업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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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빅 데이터에 대한 활용 및 분석 방법 체득에 필요한 정보 시각화를 다루는 수업에서 조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News1


◇ 절실함과 열정이 사디의 진짜 경쟁력

3년간 까다로운 과정의 연속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아주 절실해요. 한 개의 과제가 끝나면 더 잘해보려는 아쉬움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밤을 꼬박 세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다들 (디자인에) 미쳐있거든요." 최필선(29)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2년생은 진정성으로 뭉쳐진 사디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씨처럼 사디 학생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고교 졸업 이후 들어온 새내기에서부터 공학도와 인문학도는 물론 40세를 넘긴 대기업 퇴사자까지, 뒤늦게 본인에게 주어진 역량 개발에 나선 이들로 꽉 찼다. 각계 각층에서 모였지만, 디자인에 목숨을 건 공통분모는 확실하다. 사디가 20년간 진짜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원석'을 '보석'으로 바꾸려는 사디의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은 형체없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할까요. 다양한 모양에, 힘을 합치면 강이나 바다까지 가능하게 만들죠. 아직도 우리 사회엔 쓸만한 또랑물(숨은 인재)이 많아요. 사디는 그들에게 망망대해로 나갈 길을 열어 줄 겁니다." 설립 멤버로 사디를 20년째 지켜온 박영춘 제품디자인학과 교수 표정에선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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