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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인공지능법이 지남철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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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판단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자 미드저니가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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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즐겨 인용한 민영규의 글 ‘떨리는 지남철’은 입법의 여정을 담고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르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법이나 윤리는 우리 사회가 지탱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할 때, 누군가는 지남철을 찾을 것이다. 지남철은 매 순간 방향을 찾고자 흔들린다. 가야 할 방향을 찾는 역할을 쉬임 없이 해나간다. 누군가가 먼저 갔던 길이라면 그가 남긴 발자욱을 따라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며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이 가져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윤리적 접근이 강조돼 왔다. 과도한 규제보다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유럽연합 인공지능법은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윤리중심에서 법률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의 규제원칙은 위험기반 규제방식이다. 금지되는 인공지능이나 고위험 인공지능 등 위험정도에 따른 차등적인 규제이다. 인간의 기본권 제한이 우려되는 인공지능은 개발이나 채택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미지의 기술’인 인공지능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의도가 크다. 유럽연합의 시장을 위협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타당하지만, 미스트랄 에이아이(AI)와 같은 인공지능 기업의 성장세는 무섭다. 인공지능법에 규정된 스타트업 진흥을 위한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인공지능 관련 법률이 있어야 기술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인공지능 기본법으로 칭해지는 국내 법률안은 너무 엉성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없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문제가 무엇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산업법제가 취하고 있는 창업지원과 같은 규정들이 답습되어 있다. 금지되는 유형이 왜 금지되는지, 고위험 인공지능이 왜 고위험인지, 위험도에 따른 대응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 데이터나 생성물이 가져올 위험이나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찾기 어렵다. 학습데이터 문제를 위해 저작권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방안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저작권법 개정안의 정보분석 관련 규정은 두 가지 이유로 입법이 어렵다. 첫째, 저작권을 제한해 학습데이터를 확보하면서도 권리자에 대한 보상책은 논의되지 않고, 획득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배타적으로 자산화하고 있다. 둘째, 그렇게 얻은 과실을 사업자들이 독점한다.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은 저작권자의 생업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작권자는 인공지능의 이용을 막는 게 당연하다.



인공지능시대를 이끌 지남철 역할을 할 인공지능 기본법안도 부실 우려가 높다. ‘선허용 후규제’에 대해 시민단체의 우려에 따라, 해당 규정을 빼겠다고 한다. 해당 규정만이 문제일까? 인공지능이 가져올 수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정의도 없고, 문제에 대한 정의가 없으니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다. 가능하면 정책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서, 입법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한겨레

거대한 변화를 담아낼 인공지능 관련 법률을 산업법제 형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인공지능 기본법이 인공지능시대의 지남철로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입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법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법이 한 번 제정되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입법은 늦는 게 현명할 수 있다.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 다.” (민영규 ‘예루살렘 입성기’)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법학박사) 김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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