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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입양, 세상 전체를 바꿀 순 없지만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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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입양의 날 맞이한 세 가족 사연

또래모임 가지며 '공개 입양' 고민 토로하고 함께 육아

뉴스1

입양가족 자조모임 활동 모습. /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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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입양의 날은 한 가정(1)이 한 아이(1)를 입양해 새로운 가족(1+1)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2006년 제정됐다.

광주·전남에도 수많은 입양 가정이 꾸려져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광주전남가족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지역에 477명(입양자녀 165명, 부모 241명, 친생자녀 71명 등)의 입양 가족원들이 있다.

<뉴스1>은 올해로 19번째를 맞이한 5·11 입양의 날을 기념해 지역에 살고있는 입양 가족의 사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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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가정인 전정란 씨네 가족 사진. /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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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저희가 세상 전체를 바꿀 순 없지만 한 아이의 세상은 바꿀 수 있어요. 또 그 아이가 우리 가정을 행복으로 변화시켰죠."

광주 광산구 하남동에 살고있는 전정란 씨(53·여)와 이계국 씨(56) 부부. 남들보다 젊게 사는 이들 부부의 비결은 '육아'다.

10여 년 전 5월 친생자녀인 아들과 딸을 중고교생으로 다 키워 놓았을 무렵 부부는 텔레비전에서 입양 장려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젊었을 때 살기 바빴을 시절에는 우연히 지나갔을 프로그램이지만 해마다 보던 영상이 그때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들 부부에겐 중3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있었다. 부부끼리만 결정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바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자녀들은 '엄마가 나이가 있으니 입양이 낫겠다'면서 '얼른 함께 동생을 데리고 오자'고 흔쾌히 동의해줬다.

서류 준비와 보호소 방문 등 절차를 거쳐 2011년 4월 셋째인 다은이가 처음으로 정란 씨 가정에 오게 됐다. 다은이를 키우면서 정란 씨는 입양가족의 '자조모임(공통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집단 성원 개개인이 도움을 얻는 모임)'에 들어가게 됐다.

함께 모여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시켜줄지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공간도 이곳이 됐다. 매달 한번씩 꼭꼭 만나니 자조모임 회원들은 '친언니' '친동생' 같은 관계가 됐다.

"친 자식 키우면서도 힘드니까 '얘 너무 말을 안 들어' 이런 소리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입양한 아이의 경우에 친척이나 친구들한테 그런 소리하면 '왜 굳이 입양해서 그러냐'는 핀잔만 들으니 말을 못 하고 살아요. 자조모임 가서는 속상한 것도 털어놓고 다독이고 하니까 서로 힘을 얻을 수 있죠."

이후 정란 씨 가족은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수년간의 고민을 거친 끝에 넷째를 데리고 오게됐고, 그렇게 다솜이가 집에 오면서 가족이 완성됐다.

그로부터 가정은 늘 북적이고 행복으로 가득찼다. 아이들끼리 워낙 나이차이가 많다보니 갈등은 전혀 없고 오히려 첫째와 둘째가 동생들을 많이 돌봐주고 챙겨준다. 함께 공부도 하고 목욕탕도 가는 모습을 보면 부부는 뿌듯하다고 한다.

정란 씨는 첫째의 군대 퇴소식에서 셋째인 다은이가 마구 달려가 오빠를 껴안고 '보고 싶었다'고 우는 모습이 생생하다고 했다.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함께 살면서 구분 없는 '진짜 가족'을 형성해줬다.

"입양 홍보회에서 내거는 표어가 '입양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예요. 저희가 뭐 대단하게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려고 입양한 것은 아녔지만 입양을 하면 훨씬 행복해져요. 아이 받아쓰기 공부 함께 봐주고, 중학생 시험공부하고 빨리 자라고 잔소리하고…. 집도 북적이고 늙지가 않는 것 같아요. 젊게 사는 비결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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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공개'를 결정한 노옥실 씨 부부의 가족 사진. /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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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딸들'이 10년간 허전했던 '내 가슴' 채워줬다"

"입양을 흔히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고 하잖아요? 이 아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난임으로 허전했던 제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준 거죠."

광주 서구에 사는 노옥실 씨(49·여)와 정진영 씨(52) 부부는 입양 가족이다. 19년 전 결혼 직후부터 아이를 갖기를 시도했지만 오랜 기간 난임으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입양을 선택했다.

신앙의 이유로 결혼 전 '입양'에 대해 서로 긍정적인 생각이 있다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막상 실제상황이 되니 쉽게 단념이 되지 않았다.

부부가 입양을 마지막까지 고민한 이유는 주변에서 본 입양 가정이 '편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부부와 아이가 트러블을 겪고 성인이 되기 전 법적으로 인연을 끊어버리게 되는 케이스부터 다른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모습을 봤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된 행동을 해도 '누구 닮아서 저러냐', '쟤는 입양을 해서 행동이 달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봐서 걱정이 앞섰다.

이들 부부에게 용기를 준 이는 대한사회복지회 소속의 한 목사님이었다. 그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입양 가족의 케이스를 소개해 주며 곧 엄마가 될 노 씨에게 현명한 육아법을 전수했다.

그렇게 태어난 지 52일 된 선율이가 2018년 이들 부부의 '첫째'가 됐다. 또 그로부터 약 2년 뒤 두 살 어린 둘째 딸 라율이도 이들 부부의 가족이 됐다.

선율이가 6살 됐을 때 이들 부부는 아이에게 입양의 존재를 알렸다.

일각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굳이 입양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냐'고 묻기도 하지만 국내외 입양가족 모임에서는 '입양 공개'를 당연히 하는 추세다.

사춘기 때는 아이들이 더 예민하고 섬세한데 그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입양을 공개한다. 옥실 씨도 기관 바이블과 자조모임 선배들의 조언, 책 등을 바탕으로 입양 사실을 알리게 됐다.

입양된 것이 사실인데 입양에 대해서 숨기고 모르게 했다가 어느 순간 아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입양 사실을 알게 되고는 가족 형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입양 부모는 다른 부모와 거의 유사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속에 두 명의 엄마가 있다는 거죠. 나중에 애들이 자아정체성을 찾으면서 힘들어할 때, 사춘기가 오면 그때 같이 옆에 있어 주고 울어주고 웃어 주면서 그 마음을 이해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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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가정인 정유진 씨네 가족 사진. /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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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으로 시작했던 '입양'…'또래'들 위한 모임 더 많아졌으면


전남 목포에 살면서 광주전남 입양가족모임 부대표를 맡고있는 48세 정유진 씨와 동갑내기 남편 오훈 씨.

이들 가족은 '또래오래'라는 이름의 자조모임을 이끌고 있다. 또래오래는 2005년생부터 2007년생까지 입양 가족의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됐다.

두 사람에게는 2002년생의 친 아들과 입양 기관을 통해 데려온 2006년생의 막내 딸 연주가 있다.

유진 씨는 연주와의 인연이 '질투심'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친언니의 친구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마치 '그 아이가 내 아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친 아들이 5살이었을 때인데 내 자녀가 있는데도 괜히 질투가 나면서 '어딘가에 우리 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휩싸였다.

유진 씨는 젊었을 때부터 입양에 대해 긍정적이었는데 그 이후로 입양에 대한 생각이 점차 구체적으로 움직여졌다. 이전에 간혹가다 입양에 대한 의사를 물었을 때 남편 훈 씨는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그도 긍정적였다. 일주일 안에 가족들한테 허락까지 받고 곧장 연주를 집에 데려오게 됐다.

유진 씨는 연주에게 입양사실을 알린 뒤 또래오래 모임에서의 활동을 통해 정체성 확립을 도왔다.

코로나19 직전에 입양아이들을 위한 전국적인 해외 캠프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진 씨는 필리핀으로 가는 캠프에 연주를 보냈는데 사춘기였던 아이가 그 당시 아이들끼리 모여서 본인들이 같은 '입양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서 기뻤다고 했다.

작년에는 또래오래에서 댄스모임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춤을 배우게 했다. 유진 씨는 입양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아직까지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면서 다채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랑 연주는 크게 사춘기로 힘들어하진 않고 있어요. 아이가 순한 덕분이랄까? 연주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작곡 쪽으로 준비 중이에요. 우리 자녀들이 꿈도 키우고 정체성도 확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늘어났음 좋겠죠."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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