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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도경의 플레e] 아이템 계승 시스템과 총선 후 국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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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보좌관 칼럼

파이낸셜뉴스

이상헌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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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얼마 전 바닐라웨어의 신작 ‘유니콘 오버로드’의 엔딩을 봤다. 156시간, 최종 보스인 갈레리우스에 승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한동안의 게임불감증을 일시에 날려줄 정도로 압도적인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게임 내 단 하나의 콘텐츠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즐겼다.

엔딩을 봤다고 이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디저트 느낌의 소소한 퀘스트들이 등장하며, 2회차부터 새로 열리는 난이도 모드도 있다. 온라인 PVP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컨텐츠들을 플레이할 상상으로 즐겁던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엔딩 후 상황이 임기 말 국회랑 같네?’
게임의 엔딩이 ‘최종 보스 격파’라면, 국회 임기의 실질적 끝은 ‘총선 결과’다.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대개 다음 국회에서 어떤 의정활동을 할지 구상에 들어간다. 마치 엔딩 이후 자신의 업적 트로피를 감상하며 다회차 플레이를 앞둔 게이머와 같다. 낙선한 의원실은 선거 전보다는 동력이 떨어지긴 한다. 그래도 대부분 남은 두 달여 임기 동안 남은 퀘스트들을 클리어 해나가며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이 시기에는 게임의 ‘계승’ 시스템과 비슷한 면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의원실에서 발의했던 개정안들이 그것이다. 계승시스템과 어떤 면에서 닮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법안 관련 배경 설명을 먼저 하겠다. 임기마다 각 의원실들은 개정안(법안)을 쏟아내는데, 이 중 통과되지 않는 법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내용이 부실해서 혹은 여·야 정쟁으로 법안이 밀려 미처 심사되지 못하는 경우는 물론 해당 개정안에 대해 상대 정당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통과되지 않은 법안들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임기만료폐기’로 자동폐기 된다.

임기만료폐기 법안이라고 해서 그대로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재선에 성공한 의원실에서는 임기만료폐기되는 개정안 중 폐기되기 아까운 것들을 골라 새 국회에 ‘계승’시켜 재발의하는 일이 흔하다. 법안의 계승은 재선 성공 의원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실내 해당 개정안을 만들었던 보좌직원에게 그 저작권이 인정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낙선한 의원실에서 발의했던 법안이더라도 새 국회 다른 의원실로 계승되어 재발의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아무래도 ‘계승’한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은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는데 비해 훨씬 수월하다. 법안을 새롭게 발의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계승 아이템을 활용하면 다회차 플레이에서 보다 쉽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임기만료폐기 법안들은 게임의 계승 아이템처럼 ‘내 캐릭터’의 아이템 가방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버 내 전 캐릭터가 계승 아이템을 열람할 수 있고, 심지어 빼앗기도 한다. 새 국회 임기가 시작하면 과거 내가 만들었던 개정안이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의원실에서 발의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는 국회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아울러 개정안을 성안했던 보좌직원에게 무형의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례에 불과하다. 따라서 타 의원실에서 그 개정안을 가져다가 발의하더라도 이를 막을 도리는 없다.

필자도 한 차례 당한 적이 있다. 20대 국회에서 ‘게임사의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게이머들의 정당한 의견이나 불만을 묵과하지 말고 신속·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게임법 개정안과 ‘비영리 목적의 게임에 대해 등급분류와 수수료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발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21대 국회 임기 초, 모 의원실에서 이 두 개정안을 발의했고, 본회의 통과까지 됐다. 항의를 할까 고민하다 단념했다.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서나마 통과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21대 국회 임기종료일까지 18일 남았다. 아직 심사되지 않은 게임법 개정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남은 기간 동안 가급적 많은 법안을 심사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지, 아니면 22대 국회에 ‘많은 계승 아이템’으로 풀릴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정리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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