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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A급 전범이 호국영령인가”…황족까지 日에 비판 쏟아냈다는데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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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황족이 본 전쟁 / 쿠니 쿠니아키 지음 / 박선술 외 번역 / 고요아침 펴냄


매일경제

‘소년 황족이 본 전쟁’의 저자 쿠니 쿠니아키의 모습. 1937년 촬영된 사진으로 그의 나이 8살 때 모습이다. 1929년생인 그는 올해 95세로 생존 중이다.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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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는 왕이었다. 태어나니 황족이었고, 천황(일왕)의 조카뻘 서열이었다. 삶은 풍요로웠다.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사용한 피아노가 ‘집안 거실’에 노획품으로 놓여 있었고 관사엔 셰퍼트, 오리가 뛰어놀았다.

하지만 광휘는 영원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황족으로 태어났던 그는 황적(皇籍)이 박탈당한 뒤 일개 시민으로 신분이 바뀌어 해운회사에 재직해 생계를 유지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1929년생 황족 소년,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신간 ‘소년 황족이 본 전쟁’은 일제 천황의 핏줄로 태어났다가 패전으로 황적을 잃었던 쿠니 쿠니아키의 자서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세기 일본’을 정면 응시하면서 일본의 속죄를 촉구하고,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합사를 비판한다. 특히 도쿄재판(태평양전쟁 A급 전범 사후 재판)에서 누락됐던 ‘천황의 책임’을 거론한 문제작이기도 하다.

쇼와 4년(1929년) 3월, 도쿄의 한 병원에서 아이는 태어났다. 저택엔 일품요리가 즐비했다. 왕이었던 아버지 쿠니노미야 아사아키라, 어머니 토모코 여왕은 아들을 유복한 환경에서 길러냈다. 하지만 운명은 예비돼 있었다. 황족의 장남은 반드시 군인이 돼야 했다. ‘황족 남자가 정치에 간섭하면 곤란하다’는 까닭이었다. 군인되기를 거부하면 폐적(廢嫡·적자의 권리를 폐함)되는 이유도 컸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저자는, 그러나 만 16세 때인 1945년 종전을 맞는다. 두 번의 핵공격으로 나라가 패멸했다. 1년 뒤 소년은 연합국 총사령부(GHQ)에 의해 황족에서 폐지돼 일반인이 된다. 저자는 해운회사 총무과에 면접을 보고 입사하는 등 범인(凡人)의 삶을 살아 현재에 이르렀다.

그의 나이는 올해 95세. 이 책이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일본 황족 출신인 저자의 속내가 가면 없이 노출된다는 점 때문이다. 저자의 물음은 세 가지로 응축된다. 첫 번째 질문. ‘왜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국민은 동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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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국책은 부국강병이었다. 러일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로 전쟁은 끝났다. 일본 역시 채권을 남발해 전후의 난관에 빠졌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일본해(대한해협) 해전의 완승과 러시아의 배상금 납부에 그야말로 ‘광분’했다고 저자는 본다. 언론도 시민의 눈을 가렸다.

당시 일본 해군은 조약파와 함대파가 대립했다. 강경 개전파인 함대파가 상대적으로 온건한 조약파의 장군을 줄줄이 실각시켰다. 국회도 함대파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고, 되려 ‘미디어의 앞잡이’로 나섰다. 저자는 뾰족한 문체로 쓴다. “일본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대륙 진출’ 따위에 손대지 않고, 조약파 해군 장교들의 의견을 국책으로 삼았더라면 의미 없는 대량 인명 손실을 보지 않아도 됐다.”(160쪽)

두 번째 질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은 과연 호국영령인가?’

A급 전범 중에서도 소집 영장인 아카가미(赤紙)를 받고 끌려가 전사한 병사들에 대해선 저자도 합사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개전(開戰)을 결정했던 장교들을 ‘호국영령’으로 보지 않는다. “A급 전범의 사람들은 개전을 최종 결정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죄를 물어야 한다.” (187쪽) 천황 역시 개전 책임자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부정적이었음을 저자는 기억한다.

세 번째 질문. ‘천황은 태평양전쟁의 책임이 없는가?’ 저자에 따르면, 당시 패전 이후 맥아더는 천황을 만났다. 천황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나, 맥아더가 감동해 천황의 책임만은 묻지 않았다고 전해한다. 천황은 내각이 전쟁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입헌군주제를 의식해 내각의 개전 결정에 ‘NO’를 외치지 않았다는 것. 천황이 전제군주적으로 반대를 관철했어야 한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책의 결론은 ‘일본의 반성’으로 치닫는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란 이유 때문이다. 또 전쟁 후 일본인 전체가 자신의 문제로 분석하고 반성한 적도 없다고, 군부만 비난했을 뿐 개개인의 책임을 외면한다고도 일갈한다. 한일 미래 관계도 고민한다.

“피해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상식에 맞는 배상을 하고 발전적인 상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왜 초기단계 때 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선(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배상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인 것 같지만, 이러한 절차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193쪽)

이 책은 어느 ‘황실주의자’의 때늦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긋난 양국 역사를 봉합하려는 시도만큼은 분명하다.

황족으로 유년을 보냈던 한 소년이, 세기(世紀)를 건너 아흔의 노인이 되어 남기는 독특한 음성이 책에 가득하다. 원제 ‘少年皇族の見た戦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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