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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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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가담… 시신 불태워 유기한 日 ‘어둠의 알바’ [방구석 도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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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 풀려가는 도치기 50대 부부 사망 사건

한국인도 연루, 가담자와 피해자 일면식도 없어

사회문제 부상한 ‘야미바이토’ 정체는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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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 도치기현의 한 마을 강가에서 50대 부부의 시신이 불에 탄 채 발견된 의문의 사건과 관련, 20대 한국인 용의자 강광기(20)씨가 체포돼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테레비도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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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도치기현에서 50대 부부가 불에 탄 채 발견된 의문의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습니다. 7일 닛테레뉴스 등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숨진 부부의 지인이었던 부동산업 종사자 마에다 료(36)와 부부의 딸 내연남 세키네 세이하(32)를 시신 훼손 혐의로 전날 체포했습니다. 이로써 이번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는 총 6명입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30일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강광기(20)씨가 위 두 명과 같은 혐의로 붙잡히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강씨의 실명·연령은 물론 학창시절 평판과 별명까지 보도하면서 어떻게 한국 국적인 그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는질 집중 보도하고 있는데요. 그의 범죄 가담 계기로는 작년부터 일본 최대 사회 문제로 부상한 신흥 범죄 수법, ‘야미바이토(闇バイト·어둠의 아르바이트)’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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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이 정리한 최근 도치기현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50대 부부 시신 사건 용의자 조직도. 맨 오른쪽 위 인물이 '실행역'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강광기(20)씨다./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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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경찰이 현재까지 추정한 이번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망한 부부 딸의 내연남 세키네는 지난달 초 사사키 히카리(28)란 일본인에게 부부의 ‘시신 처리’를 의뢰했습니다. 세키네는 부부가 도쿄 우에노에서 운영하던 식당의 매니저였다고 합니다. 사사키는 이를 히라야마 로켄(25)이란 자에게 지시했고, 그는 재차 일본 아역배우 출신 와카야마 기라토(20)와 강씨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히라야마, 와카야마, 강씨 세 명은 불과 4개월 전 도쿄 시부야의 한 음식점에서 알게 된 사이로 서로 실명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일을 하달받은 와카야마·강씨는 지난달 16일, 도쿄의 한 빈집에서 부부를 태우고 도치기 강변까지 운반해 그곳에서 시신에 불을 붙였습니다. 부부를 빈집까지 데려간 건 이번에 체포된 마에다, 세키네로 경찰은 이 둘이 새 사업 장소를 물색하자며 부부를 속여 데려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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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치기현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50대 부부 시신 사건과 관련, 각각 범행의 '지시역'과 '중개역'을 맡았다고 추정되는 사사키 히카리(28)와 히라야마 료켄(25)이 사건 당일이었던 지난달 16일 새벽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접촉하고 있다./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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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히라야마, 와카야마, 강씨 모두가 공통적으로 “누군가에게 ‘시신 처리’를 의뢰받았다”고 진술하고 있어 의문점도 남아 있습니다. CCTV 영상 등으로 미루어보아 부부는 빈집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죠. 이에 진술과 상반되게 와카야마·강씨가 직접 부부를 죽였거나, 제3자가 살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이처럼 일본 경찰은 이번 사건이 최소 세 차례의 하달에 걸친 조직적 범죄로 보고 자세한 경위 파악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신흥 범죄 수법을 일본에서 ‘야미바이토’라 부릅니다. ‘어둠’을 뜻하는 ‘야미(闇)’, ‘아르바이트’를 뜻하는 ‘바이토(バイト)’의 합성어죠. 식당 서빙, 편의점 계산원처럼 일반적인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불법적인 일을 대신해주는 범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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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근절 캠페인 포스터. 일본어로 "'아르바이트'가 아닌 범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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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바이토의 구인·구직은 X(옛 트위터) 등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보수는 대개 건당 100만엔(약 900만원) 이상으로 고액이죠. 가담자들의 역할이 촘촘히 나뉜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최초 의뢰인으로부터 ‘지시역’과 ‘중개역’, ‘실행역’까지 최소 네 가지의 역할이 존재했습니다. 이처럼 범행 절차를 촘촘하게 나누면 가담자 한명한명이 느낄 부담감도 분배돼, 생활비가 궁한 사람이 고액의 보수에 혹해서 범죄에 발들일 확률이 높다고 현지 매체들은 지적했죠.

일본에서 야미바이토는 지난해 1월 도쿄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회문제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도쿄에 사는 한 여성이 시계·반지 등 귀금속을 도난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됐는데요.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가해자가 사용한 걸로 보이는, ‘루피’ ‘키무’ 등의 별칭을 쓴 인물들로부터 범행 지시 메시지를 받은 휴대전화를 입수했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필리핀에 거주하던 이 익명의 인물들이 소셜미디어로 사람을 구해 범행을 지시했단 내막이 드러났습니다. 이후 경찰의 집중 수사로 100명에 달하는 야미바이토 가담자가 체포됐습니다. 대부분 20세 전후의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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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전철역에 부착돼 있는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근절 캠페인 포스터/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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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바이토는 야쿠자(조직폭력배) 등 기존 일본 범죄집단과 달리, 가담자끼리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한 명을 잡아도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텔레그램 등 이용자 추적이 어려운 스마트폰 메신저로 주로 연락을 주고받아 수사가 크게 제한되기도 하죠.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야미바이토 근절을 위한 긴급 대책을 수립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련 게시글을 상시 감시하고 나섰습니다. 지난해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만 4411건의 구인글이 확인됐고요. 대학생 6명 중 1명은 직접 구인 연락을 받아봤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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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시청이 지난달 30일 X(옛 트위터)에 올린 야미바이토 근절 캠페인 게시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고액 보수 아르바이트 구인글을 조심하라. ‘렌터카를 빌려달라’는 단순 업무 대행도 후에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적혔다./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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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은 지난달 30일 X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고액 보수 아르바이트 구인글을 조심하라. ‘렌터카를 빌려달라’는 단순 업무 대행도 후에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문을 올렸습니다. 일본 각지 전철역에도 이러한 내용의 포스터가 걸렸고요. 경찰은 또 AI(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까지 동원해가면서 관련 게시글 및 주도자 추적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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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한 10대 용의자(왼쪽)와 그가 남긴 낙서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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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야미바이토는 마냥 생소한 현상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를 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10대 청소년들, 기억하시죠? 이들 역시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으로 고액 알바 구인글을 찾아 저질렀다고 진술해 야미바이토에 해당합니다. 겐다이비즈니스 등 일본 언론도 경복궁 낙서 사건을 거론하며, “일·한 10~20대 젊은이들이 ‘야미바이토’의 횡행으로 범죄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최근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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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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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서른일곱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한국인까지 연루된 일본의 ‘야미바이토’ 문제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5~36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호스트바 가려고 14억원 사취한 日소녀의 최후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4/24/NRKJEQY42ZENNIOTW2HXOSAHQU/

대행천국 일본… 부모 간병·장례도 대신해준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5/01/M224BNFUVRD2TLLT3ZVKABTI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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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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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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