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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의·정, 이번엔 ‘의대 증원 회의록’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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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2000명 근거 자료’ 요구에

복지부, 관련 자료 제출 준비 중

의료계 “의정협의체 기록없다” 공세

복지 장관 등 5명 7일 공수처 고발

정부 “의협과 보도자료 대체 합의”

의대 증원 추진의 정당성 여부를 가를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의료계가 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재판부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제출토록 요구한 자료들의 존재 여부를 두고, 의·정 간 여론전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세계일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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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에 이달 10일까지 의대 증원의 근거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요청함에 따라, 복지부는 관련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30일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등이 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정원 배정 처분 취소’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에서 각 의대가 증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는지를 조사한 자료와 의대 증원 추진 관련 회의록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은 이들 자료를 검토한 뒤 이르면 다음 주 중 판결을 내릴 계획이다.

이에 복지부는 전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을 10일 이전에 법원에 제출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보정심은 보건의료정책 최고 심의기구로, 지난 2월6일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규모도 보정심에서 최종 결정됐다. 복지부와 교육부는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위원 명단이나 회의록 역시 실명을 가린 채 ‘A위원’, ‘B위원’ 등으로 바꿔 법원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는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관계자들과 논의를 진행한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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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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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당시 의협 측과 별도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보도자료 등으로 대체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의료현안협의체 의협 측 2기 단장을 맡았던 양동호 전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역시 이날 통화에서 “보도자료나 회의 후 의협과 복지부가 각각 회의내용을 요약해서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던 것으로 회의록을 대체한 것”이라며 “회의록은 물론 양측 모두 녹취 등도 별도로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 전반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하물며 조그만 회사 조직 회의를 해도 회의록을 남기는데, 국가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아무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걸 누가 정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백년 국가 의료정책에 대해 회의 후 남은 게 겨우 보도자료밖에 없다”며 “밥알이 아까운…”이라고 썼다.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정부에 “법원이 제출하라고 한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와 관련 회의록 등을 가감없이 모두 제출하라”며 “전의비는 자료의 진위를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들이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배정 주요 회의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관련 법령을 위반한 담당 공무원을 법과 원칙에 따라 즉각 문책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의대 증원 집행정지 소송에서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 등의 법률 대리를 맡은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와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7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2차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오석환 교육부 차관,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 등 5명을 공수처에 고발할 예정이다. 고발장에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은 직무 유기와 공공기록물 은닉·멸실 등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의·정 양측의 여론전은 법원의 판결 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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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열린 '한국 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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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3일 전국 40개 의대에 공문을 보내 학사운영 방안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교육부는 학사운영 방안의 예시로 유급 절차·시기·기준 등을 재검토하거나 ‘학기제’ 수업을 ‘학년제’로 바꾸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학기제를 학년제로 전환할 경우 2학기에 1년 치 수업을 몰아서 진행할 수 있다. 각 대학은 학칙에 특례규정을 추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가 이달 2일 진행한 의대 운영대학 교무처장·의대 학장 화상회의에서는 대학별로 학칙에 유급 관련 특례를 만들어 ‘유급 데드라인’을 미루거나, 교양 수업에서 의대생 분반을 따로 편성하고 추후 시험을 치르는 방안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대학에 특정 방식을 따르도록 요구한 것은 아니다. 대학별로 여건에 맞는 방식을 검토하면 된다”며 “제도적인 부분에서 최대한 풀어 줄 수 있는 부분은 풀어 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정우·조희연 기자, 세종=김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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