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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사랑의 향기를 담은 등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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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황량한 골목길을 뒤덮은 무성한 등나무 덩굴과 그 사이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보라색 꽃들이 용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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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황량한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녹슨 창살과 금이 간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이 황량함을 뒤덮는 듯 무성한 등나무 덩굴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보라색 꽃들은 용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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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골목길을 뒤덮은 무성한 등나무 덩굴과 그 사이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보라색 꽃들이 용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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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 등나무였지만, 그날은 꽃의 아름다움을 맘껏 발산하고 있었다. 4~5월에 피는 이 꽃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고, 은은한 향기는 온 골목을 가득 채웠다.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 누군가 먼저 휴대전화를 꺼내 꽃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주변 사람들도 사진에 담기 바빴다. 황량한 골목길은 등나무꽃 덕분에 생기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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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처럼 풍성한 보라색 등나무꽃이 햇빛을 받아 용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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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꽃의 꽃말은 신라 시대의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화랑은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연못에 몸을 던진 두 처녀를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 그 연못 옆에는 남자를 상징하는 팽나무와 두 여자를 상징하는 등나무가 서로 엉켜 자랐다고 한다. 이처럼 등나무꽃은 영원한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는 꽃이 됐으며 ‘사랑에 취하다’가 꽃말이 됐다. 4월의 마지막 밤,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를 품은 등나무꽃의 향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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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취하다’가 꽃말인 등나무꽃에 향기를 쫓아 벌이 날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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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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