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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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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판례' 뭐길래…채상병 사건 피의자·고발인 모두 이 논리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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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댓글공작 사건 조사방해’ 의혹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핵심 논리로 부상하고 있다(2020도15105). 피의자 측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과 고발인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모두 이 판례를 근거로 삼으면서다. 국방부의 자체 조사 과정에서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의 구조가 유사한 데다, 박 전 대령 측과 이 전 장관 측이 모두 유리하게 차용할만한 법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김관진 판례’, 조사개입 의혹은 무죄



중앙일보

이명박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관여 활동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8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 등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재상고했지만 이를 취하했고 지난 2월 사면받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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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은 2013년 12월~2014년 4월 국방부의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과정에서 이태하 전 심리전단장에 대한 구속 의견을 제시한 백낙종 당시 조사본부장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의견을 듣고 오라’는 취지로 말하며 영장 청구를 막고 최종 불구속 송치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었다. 대법원 그러나 지난해 10월 해당 혐의에 대해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었다.

당시 대법원은 김 전 장관이 정당한 권한을 행사했으므로 남용이 아니고, 나아가 백 전 단장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고 봤다.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검찰단에 대한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에다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구체적 승인 권한까지 있기 때문에 이태하 전 단장에 대한 불구속 송치는 김 전 장관 권한 내의 행위라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이 민정수석실의 의견을 묻게 한 것이 권한을 남용했는지와 관련해서도 ‘다소 부적절하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참고할만한 의견 수집’이라는 취지로 남용을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구속영장 신청을 막은 것과 관련해선 ‘영장 신청은 국방부 장관 승인을 거쳐야 하므로 장관 의사결정이 확정되기 전엔 직권남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구체적 권리가 (백 전 단장에게) 발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백 전 본부장의 권리행사가 방해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 전 장관 측은 이에 비춰 채상병 사건 처리에 대한 일련의 지시도 모두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혐의내용을 빼고 사실관계만 송치하라’고 하거나, 박 전 대령이 경찰에 송치한 사건을 국방부가 회수한 것도 모두 적법한 지휘체계 내에서의 권한 행사이며 남용도 아니라는 취지다. 무엇보다 이첩 보류 지시에도 박 전 대령이 조사를 마친 후 경찰에 사건 이첩까지 마쳤기 때문에 방해된 권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김관진 기소 때와는 바뀐 법…“군경찰 독립성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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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3월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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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김 전 장관의 조사 방해 의혹에 면죄부를 준 옛 군사법원법이 2021년 9월 개정(2022년 7월 시행)됐다는 점이다. 군 사법제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군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소속 부대장 승인을 받도록 하던 조항은 삭제됐다. 이 외에 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 소속의 검찰단을 두되 구체적 사건에 관해선 소속 검찰단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군인 등 사망사건 관련 범죄에 대해선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 등이 아닌 이상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바뀌기도 했다.

박 전 대령 측은 “관련 법령에 독립성 조항이 생긴 만큼 법 개정 이전과 이후의 논의는 같을 수가 없다”며 “또 채상병 사건은 구속이 아닌 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이첩보류, 수사내용 관여 등에 관한 사안이라 내용도 다르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령 측이 든 대표적 독립성 조항은 2021년 6월 제정된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 7조(군사경찰의 지휘·감독) 등이다.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된 부대의 장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범죄의 정보수집·예방·제지 및 수사 수행 시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개정 군사법원법과 함께 시행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사건 이첩)에 따르면 사건을 대검·공수처·경찰에 이첩하는 주체는 국방부 장관이 아닌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으로 명시돼있기도 하다.



“권한 있어도 실질 따져야”, “애초 수사권도 없어”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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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은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에 관여한 직권남용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국방부 조사단에 대한 외압 혐의와 관련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직권남용 법리에 대한 대법원 판례(2020도15105) 발췌.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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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령 측은 이 전 장관 측이 내세운 ‘김관진 판례’의 다른 부분을 근거로 직권남용을 주장하고 있다. ‘직권의 남용이란 형식적·외형적으론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직무행위의 목적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전 장관 측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피의자들의 혐의 부분을 제외하거나 사건 이첩을 보류하도록 한 것은 외형적으로 정당한 권한 행사일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목적이 업무상의 이유인지, 사적 이익을 위함이었는지 따져봐야 하고 이 때문에 구체적 지시 내용 등 사실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 측은 그러나 ① 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국방부 장관은 군사경찰 직무의 최고 지휘자·감독자로서 군사경찰에 관한 정책을 총괄한다는 점(군사법원법 제5조2항) ② 구속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무인 신병처리 등 조사 내용에 관한 논의는 장관의 직무 권한으로 볼 수 있다는 점 ③ 박 대령 측은 수사가 아닌 이첩 전 자체 조사를 한 것으로, 권리행사가 방해될 수사권이 애초에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박 대령 측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이지만 지난 2일 채상병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향후 특검팀이 꾸려지면 수사가 이관될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선 국회 재적의원 3분의2가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뚫어야 한다.

공수처는 지난달 26·29일 박 전 대령에게 “조사 보고서의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경찰 측과 사건 회수를 논의했다는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소환조사했다. 이어 지난 2일엔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받아 당초 8명이던 주요 혐의자를 2명으로 줄여 재이첩한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조사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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