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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시위와 파업

'러닝머신 시위' 미국 아빠는 운 좋았다…'자녀 탈취' 눈감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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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법원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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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타는 아빠’ 존 빈센트 시치 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돌아가는 길에는 사실 출국 과정에서 큰 난관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도 이중 국적자다. 한국 여권도 받을 수 있고, 미국 여권도 받을 수 있다. 시치 씨는 지난달 15일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곧장 미국 대사관으로향해, 30분만에 미국 긴급 여권을 받아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문제가 생겼다. ‘입국시 사용한 여권과 출국시 사용한 여권이 동일해야 한다’는 출입국관리소 내부 지침 때문이었다. 시치 씨의 아이들은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한국 여권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한국 여권으로만 출국이 가능하다며 출국장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전에 미국 대사관에서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었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시 여권을 받으려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아이들의 엄마인 A씨가 외교부에 ‘아이들의 여권 발급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낸 상태여서다. 여권법상 미성년 자녀의 여권발급은 친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A씨와 시치 씨는 아직 법적으로 이혼이 완료되지 않아 두 사람 모두 동의를 해야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외교부-법무부와 씨름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시치 씨는 공항에서 나와 아이들과 3일간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렀다. 그 동안 시치 씨의 변호인단이 “헤이그 협약에 따라, 대법원 예규로 집행에 성공했는데 출입국관리소 내부 규정때문에 출국이 막히는 건 말이 안된다”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동인도 집행에 성공하더라도 아무도 출국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견서를 써냈고, 외교부와 법무부도 계속 협의한 끝에 결국 미국 긴급 여권으로 출국할 수 있게 됐다. 시치 씨의 변호인단은 “헤이그 협약에 따라 아동반환을 할 때에는 목적지인 나라의 여권으로 출국할 수 있게 하는 명시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 이혼하다 아이 데리고 잠적하면…



중앙일보

국회 본회의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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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치 씨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대법원 예규 개정으로 해외 국적 부모가 제기한 헤이그 협약에 따른 아동반환 사건은 아동 전문가를 동행하며 집행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런 규정이 없는 국내 아동 탈취 사건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법원 예규 개정이 ‘아동반환’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것이 아니라 ‘헤이그 협약’에 초점을 맞추고 외교부‧법무부 주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국내 아동탈취 사건은 주로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데, 양육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기 전 벌어진 아동탈취에 대해선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한 쪽 부모가 데려간 것이라 실종신고를 해도 정식 접수가 어렵고, 사건 진행 중인 법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강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법원에서 양육권 및 면접교섭을 정해준 다음에도, 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이행명령 및 감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이 역시도 도망가는 등 집행이 되지 않으면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정법원의 집행 관련 절차를 개선한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이 2022년 11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물고 있다. 올해 5월 안에 통과되지 못하면 21대 국회에서는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이미 2018년 3월 제출한 전부개정안이 한 차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한 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이혼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의 거취를 놓고도 문제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국회가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서 법이 잠자고만 있다”며 “이러다 다음 국회에도 또 임기만료로 폐기되면 전부개정안을 만든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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