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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자살까지 생각했던 날 구해준 명상… 마음의 ABS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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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명상과 정신치료 접목한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

조선일보

정신과 전문의 최훈동 교수가 휴앤심연구소에서 자신의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 교수는 "병원 부도 위기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나를 구해준 것은 명상이었다"고 말했다.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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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동양의 마음 치료법이고, 정신 치료는 서양의 마음 치료법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최훈동(71) 서울대병원 외래겸임교수는 명상을 정신과 치료에 도입한 선구자다. 고교 시절부터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돕고 싶어 ‘정신과 의사’를 지망한 그는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참선 수행을 접한 후부터 50년 동안 마음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휴앤심 명상상담연구소장으로서 강연, 상담, 유튜브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마음공부법을 널리 알리고 있다. ‘깨달음의 길 숙고 명상’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 연습’ ‘정신건강 교실’ ‘나를 넘어선 나’ 등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삶, 마음 쓰는 대로 펼쳐진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주 서울 여의도 휴앤심 명상상담연구소에서 만나 ‘마음 쓰는 법’을 들었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엔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다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심한 마음의 방황을 겪던 중 신문에서 정신과 의사들의 칼럼을 읽고 나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돼야겠다고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의대 진학 후에도 주입식 교육 방식이 안 맞아 방황하다가 불교학생회를 만났고, 참선을 만났습니다. 그러다 본과 2학년 때는 한때 출가 결심을 하기도 했지요. 정식 출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대학생 때와 졸업 후에도 열흘 철야 용맹정진에 참여하는 등 마음공부는 계속했습니다. 전문의 자격 심사 논문 주제도 ‘유식학과 심층 심리학에 대한 비교 시론’으로 썼어요.”

-IMF 때 병원을 개원했다가 부도 위기에 몰려 자살을 생각하신 적이 있다고요. 그때까지 해온 마음공부가 효과가 없었던 것인가요?

“개인 의원을 하다가 어려운 분들을 가족처럼 돌보는 병원을 꿈꾸며 김포에 정신병원으로는 가장 작은 120병상 규모로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기초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IMF가 터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 문은 열었지만 적자는 쌓이고... 부도가 뻔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가족에게 너무 많은 빚을 남길 것이 뻔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날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지요. 그럴 때 ‘내가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절망 끝에 자살을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문득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동안 등한히 했던 마음공부나 좀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당시 미얀마의 우 자나카 스님이 천안 호두마을이란 곳에서 3주간 진행한 명상 수련에 참가했어요. 그때까지 대승불교와 선불교 공부는 했지만 남방 위파사나 수행은 해보지 않았어요. 우 자나카 스님은 수행을 지도하면서 매일 모든 참가자들과 10~20분씩 면담을 했지요. 휴대폰은 반납했는데 그때까지도 병원 걱정 때문에 몇 번이나 연락하고 싶은 충동이 이는 걸 억누르면서 수행했어요. 그런데 17일째였어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현존감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느낌. 눈물이 쏟아지는데 한 3시간 동안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천근만근 쑤시고 아팠던 육체의 통증도 사라지고, 마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향하지 않고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면서 마음이 순백색으로 정화되고, 즐겁고, 편안해졌습니다.”

조선일보

정신과 전문의 최훈동 교수는 "명상을 하면 어떤 대단한 경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정확히 깨어 있음으로써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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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걱정은요?

“우선 죽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아무리 힘들어도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부도 위기의 병원과 산더미 같은 빚이 ‘나’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자 그동안의 ‘욕심’이 보이더군요. 규모를 줄이고 빚을 갚으며 병원을 살리게 됐지요.(8년 연속 ‘1등급’ 평가를 받는 등 모범적으로 운영되던 병원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병상수를 감축 운영하게 되며 다시 적자가 누적돼 2022년 문을 닫았다.) 그 사건을 통해 오만의 껍질을 깨지 못했다면 제 명상, 마음공부도 구두선(口頭禪)에 그쳤을 겁니다. 그때부터 함께 공부하는 명상 모임을 시작해서 20년 동안 이어 오고 있습니다. 그때 경험 이후로 1년에 한 달씩 인도를 찾아 수련을 하곤 했는데, 2015년 대승불교와 초기 불교의 연결 고리를 깨닫고 큰 환희를 맛본 후 비로소 밖으로 찾기를 멈추게 됐습니다.”

-’숙고명상’ 등 선생님 저서를 읽다 보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상처 때문에 현재를 놓치고 왜곡하지 말라는 것처럼요.

“우리는 흔히 주관적인 해석이나 선입견으로 현실을 왜곡합니다. 우리는 냄새 맡고, 맛 보고, 만지면서 감지하고 지각합니다. 이 과정엔 고통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석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어 고통 속으로 빠져듭니다.”

-환자 중에는 자살 충동을 얘기하는 분도 있지요?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속에는 살고 싶다는 욕망, 그것도 ‘잘 살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충만합니다. 저는 스스로 그런 충동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공감하고 위로하지요. 저는 담낭, 위, 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아플 때는 그 모두가 ‘나’이더니 막상 떼어내고 나니 내가 아니더라고요. 그런 말씀도 드립니다.”

-언어 습관만 바꾸어도 삶이 바뀔 수 있다는 말씀이 눈에 띕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버릇이 있다면 ‘그래’라고 바꿔보세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는 우울해’ ‘나는 화가 나’라는 식의 ‘일상모드’의 말을 ‘우울함’ ‘화’라는 식의 ‘명상 모드’로 전환해보세요. 또한 ‘2인칭 주어’에서 ‘1인칭 주어’로 바꿔보세요. 가령 ‘너는 나를 무시했어’를 ‘나는 너에게 이것을 기대했는데 섭섭하구나. 기분이 나쁘구나’라고 바꿔보세요. 2인칭으로 얘기할 때는 싸움이 나지만 1인칭으로 얘기하면 성찰이 일어납니다.”

-명상은 ‘마음의 ABS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셈인가요?

“명상을 하면 순간순간 깨어 있을 수 있게 되지요. 그러면 불필요한 행동은 중지되고 꼭 필요한 행동만 하게 됩니다.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뀌게 됩니다. 명상을 한다고 교통사고가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천둥벼락이 비켜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사고도 사고에서 그치게 되고 더 이상 생각으로 인한 ‘2차 화살’은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슨 대단한 경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제대로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마음공부는 끝없이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호두마을 경험 이후로 인도와 미얀마 등으로 1년에 한 달씩 수행을 다녔습니다. 10여년 전 미얀마에서 노스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한 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수행자답게 삼엄하고 반듯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천진하기가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그 미소는 중생에 대한 자비,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분이 더 좋게 보였을까요? 저도 그때까지는 삼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노스님을 만난 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미소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만 아직 멀었습니다. 마음공부의 길은 그냥 계속 가야 하는 길입니다.”

최 교수의 ‘숙고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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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적 순례는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숙고를 통한 내면의 순례임을 깨닫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은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미래까지 예측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픈 기억은 아픈 기억일 뿐, 어떤 이야기도 내가 아니며, 과거의 경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좌절감은 분노를 낳고, 억압된 분노는 쌓여서 우울이 됩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자책이나 후회보다 깨달음입니다.”

“금방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이 중독의 대상입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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