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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내부자 거래로 몰락한 ‘월가 탐욕의 상징’...아이번 보스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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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7년 4월 24일 뉴욕 연방 법원을 나서고 있는 아이번 보스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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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내부자 거래 스캔들의 핵심이자,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아이번 보스키가 세상을 떠났다.”(뉴욕타임스)

영화 ‘월스트리트’(1987)에 나오는 무자비한 기업사냥꾼 ‘고든 게코’의 실제 모델 아이번 보스키(87)가 20일(현지 시각) 미국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별세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서 게코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가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보스키의 딸은 그가 잠자던 중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1986년 11월 14일 보스키는 “저는 과거의 실수를 깊이 후회하고 있고, 제 행동의 결과는 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며 “제 인생은 영원히 바뀔 것이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존 새드가 “아이번 보스키가 불법 내부자 거래를 저질렀으며 벌금 1억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직후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 뉴욕 남부지검 검사가 훗날 ‘미국의 시장(市長)’으로 불린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다. 줄리아니는 “보스키가 한 가지 형사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월가를 주름잡는 거물이었던 보스키의 소식에 월가는 충격에 빠졌다. 주식 시장은 곤두박질쳤고, 후에 SEC는 14일을 ‘보스키의 날’로 명명했다. 블룸버그는 “보스키 사건은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충격을 안겼고 자본 시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일부 투자자의 공포를 확인시켜 줬다”고 했다.

보스키는 1937년 디트로이트의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디트로이트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판사 서기를 거쳐 금융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내부 정보를 빼내 단기 매매로 큰돈을 벌어들이며 뉴욕 증시의 대표적 ‘작전 세력’이 됐다. 블룸버그는 “보스키는 월가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차익 거래에 대해 배운 뒤 자신의 투자 펀드 회사를 설립했다”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의 물결이 일어났을 때 수억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스키에게는 비밀 파이프라인이 있었다”면서 “대가를 지급하고 정보를 빼낸 뒤 투자한 것”이라고 했다. 손쉽게 큰돈을 벌어들이는 그를 당시 포천지에서는 “머니 머신(돈 버는 기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스키는 재력을 감추지 않았다. 매일 검은색 정장에 금줄 달린 회중시계를 찼고, 맨해튼 저택 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호화로운 아파트와 하와이의 고급 콘도를 소유했다. 검은색 롤스로이스 리무진은 그의 상징 중 하나였다. 1980년대 중반엔 순자산이 2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보스키는 하루 2~3시간만 자고, 앉아있는 것보다 하루 종일 서 있는 쪽을 선호했다.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커피를 엄청나게 마셨다. 1986년 5월 UC 버클리 경영대학원 졸업식에서는 “나는 탐욕도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은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게코가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반영됐다.

내부자 거래로 먼저 체포됐던 다른 금융인의 입에서 보스키의 이름이 나오면서 검찰에 꼬리를 밟혔다. 보스키도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월가 다른 유명인의 범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검찰 상대로 협상을 했다. 그가 제보한 인물이 당시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자금줄을 주무르던 ‘정크 본드 황제’ 마이클 밀컨이었다. WP는 “보스키가 베벌리힐스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밀컨을 덫에 몰아넣기 위해 도청기를 착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밀컨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등 보스키의 ‘활약’으로 밀컨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보스키는 징역 5년을 선고받을 수 있었지만 검찰에 협조한 사정 등이 참작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2년을 보낸 뒤 1990년 출소했다. 내부자 거래를 통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는 정부와도 마지막까지 ‘거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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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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