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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사설] “세자”와 점수 빈칸, 말문이 막히는 선관위 채용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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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3.6,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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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국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0년간 291차례 진행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 전부에서 비리나 규정 위반이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적발된 채용 비리가 1200여 건에 달한다. 선관위 전현직 직원의 아들딸과 예비 사위 등 21명이 합격했고, 이 중 12명은 부정하게 채용됐다. 감사원은 전직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 1명과 사무차장(차관급) 1명 등 전현직 27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다른 사무총장 등 22명의 비리 의혹 자료도 검찰에 넘겼다. 선관위는 4급 이상이 350명 정도인 조직인데 전현직 49명이 한꺼번에 비리 혐의를 받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감사원이 밝힌 채용 비리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선관위는 전 사무총장 아들을 뽑으려고 없는 자리를 만들더니 면접관은 ‘아버지 동료’들로 구성했다. 면접에서 거의 최고점을 받아 합격한 아들에게 근거 규정도 없이 관사까지 제공해 줬다. 선관위에서 총장은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기 때문에 아들은 “세자”로 불렸다고 한다. 다른 전 총장의 딸을 선발할 때는 면접위원에게 ‘빈 점수표’를 제출하라고 한 뒤 점수를 조작했다. 전 사무차장의 딸도 채용 공고 없이 특정인의 지원만 받는 인사를 통해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 부패가 만연한 국가에서나 벌어질 법한 비리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방선관위 6급이 2019년 군수를 찾아가 선관위 4급 자녀 관련 인사 청탁을 했다. 군수가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다시 출마하려는데, 선관위가 계속 압박하니 동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선관위는 모든 선거를 지도·감독하기 때문에 선출직 공무원이나 출마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 눈치를 봐야 한다. 국회의원도 선관위 앞에선 신경을 쓴다. 선출직에게 선관위는 권력 기관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상 독립 기구’를 내세우며 설립 6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받지 않았다.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자체 감사를 고집하더니 면죄부를 줬다. 조사가 진행 중인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징계 전에 면직 처리해 공직 재임용이나 연금 수령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감시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끼리 특혜를 주고받으며 ‘신의 직장’을 만들었다. 이러니 제 일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대선 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들에게 나눠줬다. 주요 선거가 다가오면 무더기로 휴직한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8차례 받고도 알지 못했다. 해킹 조사도 거부했다. 이 선관위는 그대로 둘 수 없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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