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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朝鮮칼럼] 저출생 대책, 현금 1억원 무조건 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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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1억 지원’ 설문 조사… 국민 60% 넘게 지지, 동의

하지만 정말 과학적 근거 있나, 지역·계층 상관없이 무조건 주나

선진국엔 ‘거액 일시 지원’ 없어… 특단 조치 실패하면 악순환 우려

개별 기업 애국심은 환영하지만 ‘부영 모델’이 국가 正道는 아냐

조선일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연년생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이후 태어난 70명의 직원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원하는 출산장려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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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요 신문 헤드라인에서 ‘신생아 특공’이라는 말을 접하고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했다. 신생아가 특공(特功) 혹은 특공(特攻)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기사를 읽으며 그 특공은 특공(特供), 곧 특별공급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2년 내 임신·출산한 가구에 대한 아파트 우선 공급 정책이 30~40대 여성들의 ‘아이 낳을 결심’을 높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파트 청약제도 변경의 사회적 효과에 관한 뉴스였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아파트 특별공급이나 신생아 특별공급이나, 그 말이 그 말일 것이다.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과감해지고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른바 ‘부영그룹 방식’을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보고까지 거쳤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의 63%가 부영 모델의 출산 장려 효과에 동의했다. 재원이 난제이나 국가 미래를 위해 그 정도는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64%였다. 정부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는 입장이나 이에 대한 세간의 호응도 높은 편이다.

국가 위기 담론 앞에서 정부와 국민이 절박한 심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부가 돈으로 국민을 사는 시대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냉철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우선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1억원의 산출 근거가 과학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막연히 특정 기업의 사례에 따랐다면 정부다운 자세가 아니다. 1억원의 가치가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에 눈을 감는 까닭도 설명이 필요하다. 과거 코로나 긴급 재난 지원금의 경우처럼 국가의 일괄적 출산·양육 지원금을 거부하는 국민 또한 배려해야 한다.

1억 현금 직접 지원 방식의 시행 기한도 사전에 정하는 게 원칙이다. 최소 합계출산율 2.1명이 회복할 때까지인지, 아니면 그 이전 혹은 이후 언제까지인지를 미리 상정해야 한다. 출산·양육 지원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를 관리하는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받은 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훗날 자녀가 자신 때문에 받은 1억원의 용처를 부모에게 따지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정부 지원의 혜택을 받은 자녀가 기대수명을 못 채우거나 이민을 가버리면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출산·양육 거액 일시 지원 제도가 현실화할 경우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 아니다. 선진국들이 이런 방법을 몰라서 안 쓰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4월 말 정부 일각에서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OECD 국가 비교 분석에 따르면 현금성 지원이 들어가는 가족 지출과 출생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기재부 중장기전략위원회,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중장기 정책과제’). 여기서 결론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다.

인구 문제에 대응하는 기존의 정책적 상상력은 재정 만능주의와 부처 신설 혹은 승격 정도다. 인기 영합형 정치인과 노회한 공무원 및 관변 학자들이 의사 결정을 주도한 결과다. 부영 모델 여론조사나 저출생대응기획부 설치 계획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정도 특단의 조처마저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 아마 보다 강력한 특단적 조처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워낙 후진을 싫어하는 게 정부 개입의 속성이라, 국가 존립을 명분으로 언젠가는 강제 혼인과 의무 출산에다가 지역별 인구 할당까지 제안할지 모른다.

무릇 인간은 국가 불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각자가 고귀한 자기 목적적 주체다. 아니면 생존 조건에 따라 번식률을 부단히 조절하는 자연 속 생물학적 존재다. 채찍이든 당근이든 인위적인 외부 자극은 출산 동기로서 한계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온전히 출산율 저하에 의한 국가 소멸 사례는 역사상 아직 없다. 불행히 우리가 세계 최초가 될지는 모르나 비관 일색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자녀 계획 의향이 이전보다 증가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내년에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통계청 전망도 있다.

인구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사회 복지 시스템의 선진화와 같은 정공법의 분발로도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부영 같은 기업이 직원에게 출산지원금을 파격적으로 주는 것은 애국심 차원에서 물론 반갑다. 하지만 국가의 책무는 ‘부영 따라 하기’가 아니라 그런 기업이 크게 늘도록 경제와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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