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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정용관 칼럼]완충지대 없는 상극의 정치, 답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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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李 서로의 급소 쥔 채 오늘 첫 회담

어느 쪽 비수가 더 치명적일지 흥미롭지만

국민 불안의 요체는 “이러다 나라 망할라”

중립적 ‘책임 총리’로 협치 돌파구 찾아야

동아일보

정용관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관계는 두말할 것 없이 ‘상극(相剋)’이다. 한쪽은 그토록 만나자 만나자 했고 다른 쪽은 사실상 범죄자 취급하며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 집권 2년이 다 돼서야 마침내 오늘 만난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지만 단막극이 될지 연속극이 될지 예단은 쉽지 않다.

각각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쥔 둘은 삐끗하면 파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 대표가 “다 접고 만나자”고 한 데는 ‘이러다 회동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깔렸을 것이다.

사실 총선 승리에도 이 대표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법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다. 예상보단 크지 않았던 전국 지역구 득표율 차이, 호남과 세종에서 조국혁신당에 밀린 비례 득표율 등 찜찜함이 남아 있다.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은 재판 중인 이 대표로선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야당 리더로 공식 대우를 받는 그림이 검찰과 법원에 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기대할 것이다. 총선을 거치며 존재감을 키운 조국 대표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홈그라운드 이점은 있지만 윤 대통령의 심사도 복잡하다. 야권의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등 자신과 부인을 향한 공세는 껄끄러움 차원을 넘어서는 법적 이슈다. 실제 도입된다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특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서로의 급소를 쥐고 비수를 품은 채 나누는 둘의 대화 장면은 어색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를 듯하다.

이번 만남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또 있다. 둘 다 큰 포석을 두는 경세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서다. 둘은 중앙 정치 경험이 많지 않고 지지 기반도 그리 단단하지 않은 ‘취약한 오너형’이라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각자 할 말만 쏟아내는, 개딸이 됐든 태극기가 됐든 서로의 극렬 지지층의 기류에만 응답하는 만남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총선 후 국민 불안의 요체는 “이러다 나라 망할라” 하는 것이다.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쳐대는 상황, 공공연히 탄핵이나 하야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이제 나라는 어디로 가느냐는 걱정이다. 그러잖아도 허약해진 공직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 지경이지만 용산은 벌써 이들을 닦달할 힘도 빠졌다.

‘용산 권부(權府)’는 거칠게 표현하면 5년간 활동하고 해체될 운명의 ‘유랑 극단’이다. 윤 정권뿐 아니라 문재인,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정권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어김없이 엉성함이 드러나는 이유는 캠프 관료 등 구성원 출신이 제각각인 한시적 권력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힘까지 빠졌으니 나라 꼴은 어찌 되나.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의 핵심 의제는 협치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 뭘 주고 뭘 받았네 하는 현재 ‘이슈’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여소야대 3년의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체계’를 잡는 게 훨씬 본질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협치’를 의미한다면 협치의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실질적 협치를 이뤄내려면 네거티브 이슈를 놓고 티격태격할 게 아니라 시급한 경제 안보 복지 등의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실행할 주체로서 ‘협치 총리’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사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나 여야가 함께 양해할 수 있는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고, 용산은 실질적인 ‘책임 총리’의 권한을 부여하면 여소야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점에서 최근 용산 비선 라인이 박영선 등 야권 인사들을 언론에 흘린 것도 어이없고, 친명계가 일제히 TK 주호영 의원을 띄운 것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협치의 핵심 고리로 총리 후보를 고심하는 게 아니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이 앞선 것 아닌가.

이제라도 야권 추천을 받아 야당 인사를 총리로 세우는 방안을 상상해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 야권 인사는 누가 되든 양측 지지층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고, 국정 방향과 소속 정당의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정치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특정 정파에 속한 적이 없으면서 행정 장악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인물을 물색하는 방안은 어떤가. 분명한 건 상극의 시대, 협치 총리라는 완충지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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