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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정유소·발전소만 때린다”…에너지만 겨냥해 십자포화 퍼붓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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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시설, 정유소, 발전소 등 타격
소강 국면에 미사일·드론 공격 용이
군사작전·경제력 타격 일석이조 효과
자포지라 원전 공격까지...공포감 커져

EU는 러시아 LNG 추가 제재 만지작
러 “제제는 불법...유럽 역풍 맞을 것”


매일경제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지역에서 소방관들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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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든 가운데 양국의 에너지 기반 시설 공격이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공격 빈도가 늘었고, 양국 본토의 가스 기반 시설 등이 공격받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양측이 직접적인 충돌보다 간접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제재를 추진할 방침이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날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34기의 미사일로 자국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요 표적은 에너지 부문, 다양한 산업시설, 전기·가스 시설”이라며 “특히 가스시설은 EU에 안전한 (가스) 공급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시설”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러시아의 미사일 34기 중 21기를 격추했지만, 나머지 미사일에 의해 일부 에너지 기반 시설이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헤르만 갈루셴코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장관은 텔레그램에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서부 르비우주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등 3개 지역 에너지 시설이 손상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에너지업체인 디텍(DTEK)은 자사 화력발전소 4곳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장비가 심각하게 손상됐으며 사상자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을 집중 공격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같은 날 성명에서 남부 크라스노다르주에서 66대, 크림반도에서 2대 등 총 68대의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콘트라체프 크라스노다르 주지사는 “그들(우크라이나군)은 정유시설과 인프라 시설을 공격하려고 했다”며 “사상자와 심각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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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인해 크라스노다르주 슬라뱐스크 정유시설이 부분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슬라뱐스크 ECO그룹의 에두아르드 트루드네프 보안담당 이사는 “10대의 드론이 공장에 날아와 큰 화재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우크라이나가 크라스노다르주 정유소 두 곳의 핵심 시설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 양국 지상 병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강 국면이 길어지자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공습이 주요 공격 방식으로 부상한 모양새다. 에너지 기반 시설은 이 같은 간접 공격에서 언제나 우선 타격 목표다. 에너지 공급에 지장을 초래하면 군사작전 진행이 방해되며 상대국의 경제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주요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은 상대국 군인과 국민에게 좌절감과 공포감을 준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위협 행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공격은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18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서 근무하고 있는 러시아 당국자들이 원전 훈련센터에 대한 드론 공격 시도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달 초 “우크라이나가 핵 테러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 따르면 지난 8일 자포리자 원전 6호기 지붕 위에서 자폭 드론이 격추됐고 7일에는 자포리자 원전의 화물 하역장, 구내식당, 6호기 지붕이 공격받았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공격 사실을 부인하고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EU는 러시아산 LNG에 대한 제재로 우크라이나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6일 EU 집행위원회가 제14차 대(對)러시아 제재 패키지에 러시아산 LNG를 제재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U가 러시아의 LNG 제재를 고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실화된다면 러시아는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불법적인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더 비싼 에너지 시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에게 이익인 반면 유럽 산업 등 최종 소비자에게는 더 비싼 가스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에너지위기’ 악몽을 떠올리게 하려는 심산이다. 러시아는 전쟁 초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드스트림1’을 여러 차례 폐쇄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던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경제에 전방위적인 손해를 입었다.

다만 러시아의 경고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유럽 국가들은 2022년 3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탈피를 골자로 한 ‘베르사유 선언’ 이후 2년 넘게 에너지 수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EU는 2021년 전체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했지만, 2022년에는 비중이 25% 이하로 떨어졌고, 지난해는 10%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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