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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사설] 日 정부는 한국을 적성국으로 보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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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일본 정부가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운영하는 네이버에 대해 현지 법인 라인야후의 지분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50%씩 지분을 나눠 설립한 회사로, 현재 네이버가 경영권을 갖고 있다. 작년 11월 라인의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의 클라우드(가상 서버)가 해킹당해 고객 51만명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 총무성이 해킹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면서 네이버와 맺은 지분 관계를 정리하라고 행정 지도에 나선 것이다. 일본 측 파트너인 소프트뱅크는 일본 정부 요구에 따라 네이버에 라인야후의 모(母)회사인 ‘A홀딩스’의 지분 매각을 요청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해킹으로 개인 정보가 새는 사고가 나면 정부가 벌금을 물리고 보완 조치를 요구하는 게 통상적 방식이다. 지분 정리까지 압박하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다. 미국 의회가 중국 동영상 앱 ‘틱톡’의 미국 사업을 강제 매각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은 적대국의 ‘정보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한국과 일본은 적대국 아닌 우방국이다. 일본과 한국 민간 기업 간 계약에 따라 성립한 동업 관계를 정부가 깨려는 것은 반(反)시장적 행위로, 2003년 발효한 한일투자협정 위반 가능성이 크다. 협정은 양국 투자 기업에 대해 ‘내국인 최혜국 대우’를 규정하고 있다. 국제 소송감이 될 수도 있다. 자국민 개인 정보가 외국계 기업 손에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세계화한 시장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더구나 자유 시장 국가가 외국 투자 기업의 재산권을 힘으로 침해해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 시절 파탄 직전까지 갔던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고 최대 걸림돌이었던 징용자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안’ 제시로 풀었다. 국내적 반발과 비판을 무릅쓴 큰 결단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파기 선언한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가 정상화되고,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풀었다.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가 복원되는 등 양국 관계가 크게 호전됐다.

일본 정부의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은 양국 우호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표 기업에 경영권 매각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이 적성국이라고 선언하는 꼴이다. 한국민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는 심각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부당한 압력을 중지하고, 우리 정부도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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