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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행동주의 펀드는 단기차익만 노리는 ’먹튀’? 회장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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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트러스톤자산운용 누리집 갈무리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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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제안이란 일반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의안을 직접 제시하고 표결을 거치는 것으로서 주주권익확보의 수단이다. 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주주제안 수는 52건이고 주로 행동주의 펀드들이 배당, 정관변경, 임원선임 관련 주주제안을 했다. 올해 주주제안을 한 대표적인 행동주의 펀드가 트러스톤자산운용,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차파트너스자산운용, 안다자산운용, 시티오브런던,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 등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과 성과를 차분하게 평가하고 개선방향을 논의해보자.



우선, 주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에 대한 주주총회 표결 결과이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에 이사후보추천 주주제안을 했는데 전부 통과가 됐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제이비(JB)금융지주에 이사후보 추천을 했는데 일부가 통과됐다. 반면 차파트너스의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자사주 소각·이사후보 추천, 안다·시티오브런던 등 행동주의펀드 5곳 연합의 삼성물산에 대한 배당확대·자사주 매입은 모두 부결됐다. 대표적인 사례만을 보면 주주총회 표결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다. 그러나 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성과에 대한 오독이 될 수 있다.



행동주의펀드연합이 패한 삼성물산의 경우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7%에 이르고 대표적 우호지분인 케이시시(KCC)의 지분율 9.2%까지 합치면 약 40%에 달한다. 상장기업에서 지배주주가 40%를 가지고 있으면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상당히 힘들다. 표결 결과만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면 한국에서 재벌을 상대로 주주제안을 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대부분 패배자의 멍에를 써야한다는 의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재벌계열사의 내부지분율(총수와 특수 관계인의 주식 소유지분을 모두 합산)이 59.9%에 달하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부딪혀보는 행동주의 펀드의 도전으로 평가해야하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주는 것도 필요하다.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자는 것이 한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번 주총 성공사례인 트러스톤의 태광산업 사례를 보자. 태광산업은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54.5%이다. 그러나 트러스톤이 주주제안을 한 사내·사외이사 3인이 전원 선임됐다. 태광산업 쪽이 주주제안에 모두 찬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쪽의 태도변화가 향후 이호진 전 회장의 주주에 대한 태도 변화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는 트러스톤의 3년에 걸친 행동주의의 결실이다. 트러스톤은 3년 동안 태광산업에 대한 주주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대화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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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행동주의 펀드의 역사가 30년이 넘었고 다양한 노하우가 있다. 그런 미국에서조차 행동주의 펀드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행동주의 펀드도 주주총회에서의 표결을 가장 선호하지는 않는다. 행동주의 펀드도 기본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인데 표결을 하려면 물리적·시간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주총 전에 행동주의 펀드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가지고 회사 쪽과 비공개대화를 하거나 공개서한을 보내 회사 쪽을 압박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과가 안나면 주주제안을 통한 표결로 가는 것이다. 즉, 표결로 갔다는 것은 회사 쪽이 주주제안에 대해 전혀 전향적인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사 쪽이 주주가치 제고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가 제법일 것이며, 이런 경우 총수가 주주에게 무심할 가능성이 높다. 총수 일가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일반주주를 회사의 주요한 이해관계자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표결에서 졌다고 완전히 진 것도 아니다. 차파트너스의 금호석유화학 주주제안 사례이다. 차파트너스의 자사주 전량 소각 주주제안은 부결됐지만 차파트너스의 노력이 없었다면 회사 쪽의 자사주 50% 소각 계획이 나왔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금호석유화학은 10년이 넘게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이사회에서 자사주 50%를 3년간 분할 소각하고,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 목적으로 추가 취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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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인파트너스 누리집 갈무리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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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에서 정면으로 이긴 경우는 얼라인파트너스의 제이비(JB)금융지주에 대한 주주제안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제안으로 사외이사 2인을 선임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이것의 비결은 집중투표제다. 이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로, 예컨대 이사 3명을 선임한다면 주당 3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이때 주주는 선호하는 특정이사에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일반주주의 권익을 대표하는 이사의 선임가능성을 높인다. 내가 10주를 가지고 있으면 30개의 표를 한명에게 몰아주는 것이다.



한국은 상법상 집중투표제가 허용되나 대부분의 재벌이 정관으로 이를 배제해서 집중투표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제이비금융지주는 다행히 정관상 배제를 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올해의 행동주의 펀드를 평가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해보자. 첫번째,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으로 보인다. 1월초부터 3월말까지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태광산업, JB금융지주, 금호석유화학, 삼성물산의 주가상승률은 평균 16%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9% 상승하는데 그쳤다.



두번째, 트러스톤과 얼라인파트너스는 각각 태광산업과 제이비금융지주에 대한 행동주의를 2년 이상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곳에서 주주제안을 통한 이사선임이라는 성과를 냈다. 위 두가지를 합쳐보면 개선방향은 명확하다. 아직까지도 재계 및 몇몇 언론에서 행동주의 펀드에게 단기차익만 노리는 ‘먹튀’라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다. 총수의 입장에 서서 행동주의 펀드를 먹고 튀는 ‘늑대‘로 만드는 것은 그만하고, 행동주의 펀드가 제안한 의제 그 자체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 생산적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제안이 터무니없다면 주주가 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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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8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업과 주주행동주의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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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집중투표제가 주주총회 표결에서 소기의 성과를 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집중투표제가 없이는 특히 재벌의 지분구조상 표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기업이 정관상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와 더불어 이사 전원 또는 다수가 매해 재신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집중투표제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수가 많아야 일반주주에게 더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을 애초에 막는 꼼수를 막아야 한다. ‘3%룰’이라는 것이 있다. 이사회 감사위원 선임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는 제도다. 소액주주 권익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이를 임시주총을 통해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엘리베이터의 임시주총 사례다. 회사 쪽이 임시주총의 소집결의를 촉박하게 하여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제안을 할 여지를 봉쇄해버린 것이다. 임시주총에서도 주주제안이 가능하도록 회사가 소집결의를 현재의 6주 전 보다 더 일찍 하게 해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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