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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방시혁의 '아일릿'은 뉴진스 카피했나…음악계 "문제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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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진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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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하이브 CEO(최고경영자)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두고 불거진 사태와 관련해 "감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진상을) 확인한 후 조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오전 하이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서다.

그는 "지금 문제가 되는 건들은 아일릿의 데뷔 시점과는 무관하게 사전에 기획된 내용들"이라며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사안이어서 이를 확인하고 바로잡고자 감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는 전날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를 이유로 민희진 대표 등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민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하이브 산하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따라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나를 해임하려 한다"고 맞받아쳤다.

하이브는 이날 '(본사에서) 빠져나간다'는 의향과 해외펀드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적힌 어도어 내부문건을 찾아냈다고 밝히면서, 민 대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아일릿=뉴진스 카피캣?



지난달 25일 데뷔한 아일릿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신인 걸그룹으로,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긴 생머리의 청초한 소녀 이미지, 패션행사를 통해 첫 공식스케줄을 소화한 점 등이 뉴진스와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아일릿이 데뷔곡 ‘마그네틱’, 후속곡 ‘럭키 걸 신드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뉴진스가 ‘어텐션’·‘하입보이’로 활동한 흐름과도 닮았다.

이에 민 대표는 22일 낸 입장문에서 “아일릿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 출연 등 연예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 ‘민희진 풍’, ‘민희진 류’, ‘뉴진스의 아류’ 등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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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와 아일릿은 패션 행사로 데뷔 첫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2022년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샤넬 행사에 참석한 뉴진스(위), 지난달 파리 패션위크를 방문한 아일릿. 사진 각 그룹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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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진스 데뷔 이후 대부분의 그룹이 이지리스닝을 표방하고, 나잇대에 어울리는 음악을 하는 흐름을 볼 때, 아일릿도 그런 트렌드를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유튜버이자 작곡가 미친감성은 “선배 그룹들의 성공을 본받아서 어린 친구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걸 나쁘게 볼 건 아니다. 방 의장이 작사·작곡에 참여한 ‘마그네틱’은 1990년대 올드스쿨 분위기로 굉장히 미니멀한 사운드다. 모 아니면 도가 될 음악이었는데 방 의장이라 (성공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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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은 모든 그룹들과 그들의 팬에 '핑크블러드'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줬다. 핑크색은 SM의 회사 컬러다. 사진 유튜브 SM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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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속그룹 색깔을 비슷하게 이어가는 건 SM, JYP, YG 등 메이저 기획사들이 고수해왔던 방식이다. SM은 ‘핑크블러드’(SM 고유의 색깔)로 홍보를 하고, YG는 투애니원-블랙핑크-베이비몬스터로 이어지는 힙합 걸그룹을 계속 론칭해왔다. 같은 하이브 소속인 아일릿이 뉴진스와 유사성을 띈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엔터 전문 이용해 YH&CO 변호사는 “콘셉트, 의상, 헤어 등이 저작물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뉴진스가 가요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아니라면 법적으로 해결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 대표가 뉴진스를 통해 새로운 아이돌 공식을 내놓은 건 맞지만, 같은 소속사의 아일릿을 ‘뉴진스 아류’라고 표현한 것은 선을 넘은 행동이란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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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는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데뷔 1년 4개월 만에 ‘톱 글로벌 K-팝 아티스트’를 수상했다. 사진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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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청한 가요관계자는 "뉴진스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그룹은 아니"라며 "신인 프로듀서인 민 대표가 아일릿을 '뉴진스 카피'라고 주장하는 건 자의식 과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하이브 울타리 안에서 아일릿과 뉴진스는 방향성이 다른 그룹이다. 원 프로듀서인 뉴진스와 달리 아일릿엔 유명 프로듀서 여럿이 붙었다”면서 “민 대표의 주장은 두 그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레이블 콘트롤의 실패 사례



하이브 내홍은 문어발식 레이블 경영 방식에 따른 예견된 위기란 분석도 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레이블을 사들여 하이브 산하에 두면서 융합보다는 독립 경영을 강조해온 탓에 레이블 간 경쟁이 심화됐고, 결국 어도어 사태와 같은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2005년 방 의장이 설립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부터 출발한 하이브는 빌리프랩(2018), 쏘스뮤직(2019), 플레디스(2020), 케이오지(2020), 하이브 유니버설(2021), 어도어(2021), QC미디어홀딩스·엑자일 뮤직(2023) 등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왔다. 현재 하이브 산하 레이블은 미국과 일본 등의 해외 회사를 합쳐 11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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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하이브 연결회사. 2024년 현재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 지분은 80%이며, 민희진(18%)을 비롯한 어도어 경영진이 20%를 갖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이브는 “각 레이블의 독립적 운영을 통해 레이블 간 경쟁과 협력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레이블 간 경쟁을 부추겨왔다. 사내에 컨트롤타워를 두고 레이블 운영을 하고 있는 JYP엔터테인먼트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이를 통해 하이브는 짧은 기간 내에 르세라핌, 뉴진스, 투어스, 보이넥스트도어 등의 신인그룹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이같은 레이블 경영방식은 전통적인 '톱 다운' 방식보다 더 많은 가수와 음악을 양산하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 또한 명확하다. 음악계 대세 트렌드를 따르다 보니 뉴진스와 아일릿 사례처럼 '카니벌라이제이션'(자기잠식, 제살깎기)이 벌어질 수 있고, 레이블 간의 성과 경쟁으로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레이블끼리 피 터지게 싸운다" "협력은커녕 완전히 다른 회사다" "서로 컴백 일정도 조율 안 한다" 등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어도어가 뉴진스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뉴진스의 성공을 하이브와는 무관한, 민 대표 자신과 어도어의 성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가 80%라는 압도적 지분을 보유한 어도어에서 잡음이 빚어졌다는 사실은 하이브의 레이블 경영 및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멀티 레이블 체제는 중앙 집권이 아닌 영주 체제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꾸려나가려면 모기업이 누적되는 리스크들을 관리·보완해야 하는데 하이브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멀티 레이블 체제의 문제라기보다는 레이블 컨트롤이 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히 '민희진 대 방시혁' 구도로 볼 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요구하는 대중에 부응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콘텐트의 유사성 등을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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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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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피프티피프티 재연 안돼



이번 사태는 멤버들이 모회사를 두고 프로듀서의 말만 믿었다가 낭패를 봤던 피프티피프티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민 대표는 하이브에 고용된 프로듀서이고, 뉴진스는 어도어에서 활동하지만 소속은 모회사인 하이브다. 만약 민 대표가 뉴진스와 함께 독립을 시도한다면, 피프티피프티 사태처럼 여론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민 대표는 “피프티피프티 사건처럼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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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는 5월 24일 컴백을 앞두고 있다. 사진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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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릿은 K팝 걸그룹 최초로 데뷔 당일 스포티파이 ‘데일리 글로벌 톱 송’(3월 25일 자) 차트에 진입하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사진 빌리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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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K팝 걸그룹이 집안싸움으로 무너지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도헌 평론가는 “피프티피프티 사태와는 다른 흐름으로 보이나, 뉴진스와 아일릿의 이미지 훼손은 이미 상당하다. 5월 컴백을 알린 뉴진스가 활동을 무사히 이어간다고 해도 이전의 파급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막 데뷔한 아일릿에 붙은 '아류'라는 꼬리표는 멤버들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지난해 SM-하이브-카카오 싸움과 달리, 이번 싸움은 양쪽 다 치명상을 입는 승자가 없는 싸움"이라며 "민희진 대표도, 하이브도 이틀 사이에 치명상을 입었다. 쉽게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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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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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집안싸움에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23일 하이브 주가는 전일대비 2500원(1.18%) 빠진 21만원에 장을 마쳤다. 한화투자증권의 박수영 연구원은 ‘하이브 어도어 관련 코멘트’ 보고서에서 “민 대표의 어도어 지분이 18%에 불과하고 뉴진스 활동이 그대로 진행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뉴진스가 배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 보다는 하이브 내 민희진 배제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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