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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5남매 둔 與 박수민 당선자 “둘째·셋째 아닌 첫째 낳는 것부터 국가가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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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13] 강남乙 당선 與 박수민

조선일보

국민의힘 박수민 22대 국회의원당선자가 2016년 다섯 명의 자녀와 함께 찍은 사진./박수민 당선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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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국민의힘 박수민(57·서울 강남을) 당선자의 휴대전화에는 아내 김정아(47)씨 이름이 ‘생활의 중심’이라고 저장돼 있다. 기획예산처 공무원이던 박 당선자는 동시통역사였던 아내를 만나 2006년 결혼했다. 부부는 박 당선자가 40살이던 2007년부터 46살이 되던 2013년까지 6년간 2남 3녀를 뒀다. 첫째 딸이 고2,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6월부터 국회로 출근하면 “더욱 바빠질 것 같다”는 박 당선자는 “이제 아내 이름을 ‘인생의 중심’으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가사 참여도가 낮은 모양이다.

“아내가 ‘당신은 가정적인 사람인데 가사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 여행 가고 박물관 가고 그런 건 다 했지만 육아에서 제일 힘든 건 빨래, 식사, 기저귀 갈기 등의 무한반복 아닌가.”

-어떻게 5자녀를 두게 됐나?

“단순하다. 첫째를 낳았더니 둘째가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했다. 둘째를 만나니 셋째가 보고 싶었고.”

-일과 가정의 병립이 어려웠을 텐데.

“삶을 재설계해야 했다. 공직을 떠나 사업을 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됐다. 아내는 직업을 포기했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이걸 어떻게 개인에게 맡기나. 애 낳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저출생 대책이 잘못됐나?

“접근부터 틀렸다. 셋째를 낳으면 등록금 혜택을 준다, 둘째를 낳으면 뭘 해준다,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첫째부터 도와줘야 된다. 첫째를 낳아 보니까 하나도 어려워 포기하고 싶은데.”

아내 김씨는 “만약 계획을 했다면 5명은 못 낳았을 것”이라며 “젊을 때는 힘들고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없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지금은 나 자체가 남편과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는 “늘 층간소음 눈치를 봐야 했지만 지금은 어딜 가나 애국자 소리를 듣는다”며 “사춘기 아이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걸 지켜봐야만 해서 힘들었지만 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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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박수민 서울 강남을 당선자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남 3녀를 둔 박 당선자는 우리나라 저출생 대책에 대해 “첫째부터 도와줘야 된다”고 했다./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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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에이스’ 꼬리표를 달고 경제부총리를 목표로 했던 박 당선자는 “청와대·기재부에서 국회와 정치인들을 상대해 보니 정치의 한계를 많이 봤다”며 “국가 경영이 표류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일찌감치 정치 투신을 마음먹은 계기였다. 흔히 ‘늘공(직업 공무원)’을 “영혼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박 당선자는 “나는 영혼이 넘쳤던 관료였다”고 했다.

-엘리트 관료 생활을 포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나름 선두 주자였다고 생각한다. 예산실, 세제실을 거쳐 청와대에 갔다가 국제금융국으로 복귀하려 했다. 기재부 모든 영역을 다 다루는 건데 속으로 차관, 장관 생각을 왜 안 했겠나. 그런데 관료로서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나라가 잘되는 게 아니더라. 주어진 일은 계속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5년에 한 번씩 ‘번아웃’이 왔다. 지위와 명예보다는 자아와 가족을 더 좇은 것이고 후회는 없다.”

-청와대에서 한동훈 행정관과 같이 일했다.

“기재부 자긍심을 갖고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민정실에서 한 행정관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 인생에서 만난 ‘톱7′ 중 한 명으로 우수했다. 국민의힘에 와서 만나자마자 이별해 아쉽다.”

-3월 15일 총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국민추천제로 공천을 받았다.

“사실상 ‘벼락 공천’이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 ‘박수민이 복귀하면 좋겠다’며 복수로 추천을 했다고 들었다. 출마는 갑작스러웠지만 늘 공직에 반드시 돌아가서 국가 경영의 문제를 풀겠다는 각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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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 당선자의 휴대전화 메신저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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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있는 1호 법안이 있나?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육성을 위한 특별법 시리즈가 목표다.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돕도록 부동산·주식·연금 등 세금을 확 뜯어 고칠 것이다.”

-국민의힘 자력으로 법안 통과를 할 수 없는데.

“국민의 삶을 위해서라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모시는 자세로 민주당 의원들과 공개 토론을 벌여 법안을 설득하겠다.”

-왜 중산층의 자산 증식이 중요한가?

“저출생 해법이 양극화 해소와 다르지 않다.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왔더니 집값이 비싸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한다. 결혼하기 쉽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쉽게 해줘야 한다. 생활이 안정돼야 한다. 여건과 여유도 주지 않고 아이만 낳으라면 되겠나.”

-자녀 5명을 키워보니 어떤가?

“소수자 심정을 알게 됐다. 사회와 규격이 안 맞는다. 자동차도 4인, 아파트 방의 개수도 4인 가족 중심이다. 반면 아이들은 5명이 미친듯이 싸우고 부딪치며 사회화 과정을 빨리 겪는 것 같다. 요즘 20대가 사회생활에 두려움이 많다던데 우리 애들은 어딜 가도 적응은 잘하겠다고 생각한다.”

-인생 위기의 순간은.

“아내가 넷째가 생겼다고 했을 때가 고비였다. 몇십 초 동안 고민했다. 속으로 어마어마한 생각이 스쳐갔다. 두려웠다. 넷째를 감당 가능할까.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하냐’고 답이 나갈 뻔했는데 다행히 ‘너무 잘됐다. 축하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선거운동을 돕지 않았다고 하던데.

“요즘 말로 ‘츤데레(일본 속어로 새침데기 같지만 실제론 따뜻한 사람)’라 쿨하게 자기 일들 하면서 ‘아빠 당선됐네’ 그러더라.”

아내 김씨는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니 각자 삶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며 “아빠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도 아이들은 ‘아빠가 하고 싶은 거니까 당연히 해야 된다’면서 ‘나한테 민폐만 끼치지 마’라고 하더라. 그래도 다들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박 당선자 부부는 본지에 가족사진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김씨는 “사춘기다 보니 지금 모습이 나가는 건 원치 않더라”며 “3명은 어릴 때 사진이면 괜찮다 했고, 2명은 그마저도 탐탁지 않아 해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했다.

-22대 국회 저출생 특별위원회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당연하다. 어떤 역할이든 무조건 할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더 늦출 수 없는 저출생 문제는 반드시 방향을 잡아야 된다.”

☞박수민은 누구

1967년 서울 태생. 서울대 경영학과, 36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를 거쳐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5년간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실, 민정수석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일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유럽개발은행(EBRD) 이사를 거쳤다. 2018년 공직을 나와 벤처 투자가, 스타트업 대표를 하다 4·10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서울 강남을에서 국민공천제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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