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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성인 페스티벌’ 취소…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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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인 페스티벌(2024 KXF The Fashion)’ 주최 쪽이 18일 유튜브를 통해 행사 취소를 공지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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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이브이(AV·성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음란물) 배우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성인 페스티벌(2024 KXF The Fashion)’ 개최를 놓고 요 며칠 거센 논란이 일었다. 경기도 수원시와 파주시, 서울시에 이어 서울 강남구 등이 행사 개최를 불허하거나 금지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17일 천하람 개혁신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제한하고 남성의 본능을 악마화하는 사회는 전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성명 강남구청장의 공정한 행정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논쟁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성인 페스티벌’, 대체 어떤 행사길래?





성인 페스티벌은 사실 올해 처음 개최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콘텐츠 제작사 플레이조커와 한국성인콘텐츠협회(KACA)는 지난해 12월10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처음 행사를 열었다.



이들이 한국성인콘텐츠협회 누리집에 올린 글을 보면, 지난해 행사에 1300명이 다녀갔으며 “(올해 행사에서도) 비키니 수영복, 에스엠(SM·사도마조히즘, 가학-피학적 행위) 의상을 입은 에이브이 배우들의 패션쇼를 볼 수 있다”고 소개돼 있다.





예매 사이트를 보면, 올해 페스티벌 일반 티켓은 7만원, 브이아이피(VIP) 티켓(선착순 30석)은 320만원이다. 7만원짜리 티켓의 경우, 구매시 에이브이 배우 사인을 받고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설명이 돼 있지만, 브이아이피 티켓의 정확한 서비스 내용이 공개돼 있지 않았다. 주최 쪽은 이달 초 국회 국민청원에 올린 자료에서 5천명 이상이 입장권을 샀다고 밝혔다.





올해 행사가 처음 예정됐던 장소는 경기도 수원시 관할이었다. 그러나 성인 페스티벌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수원여성단체네트워크와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반발하며 제동을 걸었다.



수원여성단체네트워크 등은 3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행사에서) 티켓을 구매한 남성을 대상으로 에이브이 배우들이 ‘유사 성매매’로 볼 수도 있는 행위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는 ‘여성의 성’을 매개로 수익만을 노리는 성착취이며 성매매를 옹호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행사장이 인근 초등학교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50m 거리에 위치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학부모 반발까지 더해졌다.



주최 쪽은 사흘 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통해 “미성년자는 출입이 불가하고 신분증 확인 후 들어갈 수 있는 행사에서 성인들이 성인들을 위해 비키니를 입고 패션쇼를 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대한민국 사람들 첫 경험 나이가 13.6살로 아이들의 성문화는 앞서가고 이는데 부모들만 뒤처지고 있다”며 “올바른 성문화를 위해 성인 관련 회사와 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플레이조커가 지난해 성인 페스티벌 장면을 소개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비키니를 입은 여성 배우들이 남성 참가자에 밀착해 신체를 접촉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엎드려 누워 있는 남성 등 위에 올라가 가슴 등 신체를 밀착하는 동작도 나타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현장에서 지원한 참가자가 몸에 스티커를 붙이고 (비키니 입은) 배우가 눈을 가리고 이를 찾고, 누워있으면 배우가 위에 올라가 주는 게임이 있었다”는 지난해 행사 참여 후기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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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여성의전화 등으로 구성된 수원여성단체네트워크가 3월 12일 수원역 문화광장에서 성인 페스티벌 행사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수원여성의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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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만 오는데 뭐가 문제냐 vs 여성을 거래하는 물건 취급







성폭력 예방 교육 활동을 하는 김영서 강사는 주최 쪽 주장에 대해 “첫 경험 연령이 13.6살이라며 ‘어차피 애들 다 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데 13.6살에 맺는 성관계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게 사회와 어른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이브이 배우를 초청해 비키니 쇼를 하는 방식으론 ‘올바른 성교육’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대표이자 성평등 교육활동가인 이한 강사도 성에 대한 엄숙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이번 행사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는 “(성에 대한) 사유 없이 단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의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세상 모든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형태로만 성을 향유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돈을 내고 비키니만 입은 여성의 몸을 구경하게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을 자율적 주체가 아닌 ‘거래하는 물건’으로 보는 것이므로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해야 할 ‘문화’로 봐야 하는지 물음도 뒤따랐다.



일본 에이브이 산업 자체에 내재한 성 착취와 인권침해, 폭력을 눈감은 채 이를 즐길 수 있는 성문화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문제 의식도 컸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지난 5일 행사 금지 뜻을 밝히는 입장문에서 “일본 에이브이는 여성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시키고 강제추행 및 강간 등을 조장하는 동영상을 생산하기도 하며, 배우들이 제작사로부터 금전적으로 착취당하고 신체·정신적 학대를 당한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대 여성 구도로 갑자기 경로 이탈







‘남성 권리’를 내세워 성인 페스티벌 개최를 허용해야 한다는 천 당선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그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여성 전용 19금 공연’을 열거하며 “여성들의 본능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들의 정당한 권리인 것으로 인정되는 반면, 남성들의 본능은 그 자체로 범죄시되고 저질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치부된다”고 말했다.



과연 이 행사가 ‘올바른 성문화’ 만들기를 위한 것이냐는 논쟁을 ‘남성 대 여성’ 대결 구도로 틀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남성 대 여성 구도로 사안을 바라보는 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지우는 기계적 성평등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잔인한 대응에 항의하는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나오자 백인 생명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는 구호가 나오고, 결국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All Lives Matter)’는 말로 마무리됐다”며 “모든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은 맞지만 그런 보편적인 언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겪은 차별의 역사를 지운다”고 설명했다. 즉 ‘여성도 즐기고 남성도 즐기자’는 식의 관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역사를 삭제하는 행보라는 취지다.



천 당선인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번 사안을 남성 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해석하는 관점은 외려 성인 콘텐츠에 대한 토론과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논쟁만 유발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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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나우(HRN)가 2016년 발간한 ‘에이브이 산업에 의한 여성·소녀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 보고서\'에는 에이브이에 출연을 강요당한 뒤 해당 영상이 지속적으로 판매되자 결국 자살한 피해자 사례가 언급돼 있다. HRN 보고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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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문제 없다”더니…교육환경보호법 들어 금지 나선 지자체





행사 내용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개로, 수원시 등 일부 지자체가 논란이 된 행사를 금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에는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수원시의 경우 3월14일까지만 해도 “법적 하자가 없어 행사를 금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가, 여성·시민단체와 학부모 등의 항의가 거세지자 3월29일 전시장 옆에 초등학교가 있다는 이유(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제9조에 의거한 ‘금지된 업소나 시설’)를 들어 행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서울 강남구청은 지난 16일 식품위생법 제44조(식품접객업자는 업소 안에서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공연·영화·비디오·음반을 상영, 사용해선 안 된다 규정) 등을 내세워 행사 개최를 막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관 지을 수 있는 법 조항을 동원해 논란이 번지는 걸 피하고 보자는 걸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책임 있는 지자체로서 여성을 타인의 욕구를 위해 기능하는 사물로 보는 (성적 대상화) 문제를 불허 사유로 명확히 하고 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주최 쪽이 지자체의 결정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도 보인다.



주최 쪽은 일단 서울 강남구에서 20일 개최하려던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18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지했다. 하지만 직전까지만해도 행사 강행 의지를 밝혔던 만큼, 곧바로 논란이 끝날지는 미지수다. 주최 쪽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 청원에서 “수원시는 지난 석달 간 민간업자가 준비한 성인 페스티벌에 대해 합법적이라서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행사가 3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여, 행사가 열리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 데 이어,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태다. 주최 쪽은 이와 관련해 유튜브 채널에서 19일 행사 취소 등에 대한 입장 등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젠더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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