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카페 2030] 슈뢰딩거의 아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예쁜 여자와 핫한 맛집들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이질적 존재. 대학 동창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였다. 동그란 눈, 달싹이는 작은 입술을 한참 들여다봤다. 휴대폰 너머로 달짝지근한 아기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직감했다. ‘언젠간 엄마가 될 수 밖에 없겠구나.’

아이 없는 미래를 그려본 적 없다. 지난해 5월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 10명 중 6명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했다는데, 나머지 4명에 속하는 셈이다. 출산을 포기하는 또래들을 이해한다. 치솟은 집값, 어렵게 시작한 커리어가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외줄타기 같다는 워킹맘의 일상.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더라도 언젠간 아이를 키워보고 싶다. 첫 걸음마·첫눈·첫 등교…. 아이가 마주하는 ‘처음’의 순간을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그 경험이 삶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런데 결혼은 잘 모르겠다. 애정과 신뢰라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감정을 토대로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결혼을 해야만 삶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새 차를 살 때 추가하는 옵션처럼,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삶의 옵션 정도로 느낀다. 또래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지난해 통계청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답한 미혼 여성은 22.1%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내가 되지 않고 엄마 되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같은 보조 생식술은 남편이 없으면 산부인과에서 시술을 거부한다. 만에 하나 출산을 하더라도 부부 단위 가정에 주어지는 각종 복지 혜택은 받을 수 없다. 연인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양육자 역할을 같이 해도, 그는 위급한 순간 아이의 법적 보호자가 되지 못한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비혼 출산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신생아 10명 중 6명이 비혼 가정에서 태어난다. 이들은 결혼제도 아래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같은 복지를 누린다. 영국·아이슬란드 등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비혼 출산 비율은 41.9%. 이 중 비혼 출산율 상위권 국가들은 합계출산율도 1.5명을 가뿐히 넘는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비혼 출산은 아직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될 때를 떠올려보자. “가정의 근본이 무너진다”며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때론 제도가 여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국가가 비혼 가정을 새로운 가족 형태로 여기고 지원한다면, 국민 정서도 서서히 바뀔지 모른다. 프랑스의 ‘시민결합(PACS)’처럼 혼인 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으로 서로를 보살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기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슈뢰딩거의 사고 실험에 따르면,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생존과 죽음이 중첩된 모호한 상태. ‘까보기 전엔 모른다’는 얘기다. 아기 역시 태어날지, 상상 속 존재로 남을지 아직은 모른다. 바람이 있다면, 언젠간 걱정 대신 축하 속에서 아이를 만나고 싶다. 나를 닮은 작은 인간이 첫울음을 터뜨릴 때, 나지막이 속삭여 줄 것이다. 특별하고 재밌는 삶이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다고.

[김지원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