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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전공의 이탈 두달…의료진도 환자도 “더 이상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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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사직 두달째…의료공백 장기화

환자들 고통 호소, 의료진 업무 부담 토로에도

‘해법 없는’ 의정갈등…의료 현장은 악화일로

헤럴드경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두 달에 접어드는 18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에 환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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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대한 반발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두 달째 접어들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환자들은 길어지는 의료공백에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고 의료진들은 업무 부담과 피로도를 호소했다. 오는 25일부터는 의대 교수들이 냈던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 모두 ‘2000명 증원’을 두고 ‘원점 재검토’와 ‘조정 불가’로 맞서고 있다. 짧은 기간 내 사태가 종결 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료공백 장기화… 환자·의료진 모두 지쳤다=두달여 전인 2월 19일을 기점으로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의 집단사직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등의 예외없이 전면적으로 이뤄졌다. 당직근무를 맡고 환자들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등 의료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전공의들이 자리를 뜨자 병원들은 휘청였고,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18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를 찾은 50대 폐암 환자 A씨는 “총선이 끝나면 정부랑 의료계가 이 사태를 잘 매듭지을 수 있다고 봤는데 그런 기대조차 무너졌다”며 “언제까지 환자들이 맘 졸이며 뉴스를 봐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위암센터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이모(60) 씨는 “정부나 의사나 다 똑같이 밉다. 얼른 대화하고 풀 생각을 해야지 서로 고집만 피우는 것 같다”며 “환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채혈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B씨도 “정부든 의사든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도와줘야지, 더 아프게 만들고 있다”며 “혹시라도 진료가 미뤄질까봐,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까봐 매일매일 불안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의정갈등에 환자뿐 아니라 의대 교수들과 진료보조(PA) 간호사 등 의료진도 지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두 달째 병원을 비운 전공의의 공백을 메우느라 주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16일 4개 병원(서울·분당·보라매·강남) 교수 52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52.3%가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89.2%는 우울증이 의심됐다고 밝혔다.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도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병원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병동 간호사들을 1개월부터 1년까지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보내고 있다”며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간호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방 파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PA 간호사들을 투입했지만 의료법상 불법 소지가 다분해 이들 역시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

헤럴드경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2달에 접어드는 이날(18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에 환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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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의정갈등에 악수(惡手)도 여전=환자와 의료진 모두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의정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의대증원 추진과 관련해 직접 언급을 삼가고 있다. 정부는 총선 전날인 지난 9일 이후 이날까지 1주일 넘게 범정부 차원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열지 않고, 의사 집단행동과 관련한 브리핑도 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조규홍 장관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를 연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비상진료체계 운영과 관련해 신규 인력을 채용한 상급종합병원·공공의료기관에 인건비를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의대 증원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지도,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하지도 않았다.

의료계 역시 ‘2000명 증원 백지화’ 등 기존의 입장을 벗어난 발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총선을 전후해 정부와 야당은 의료계뿐 아니라 국민도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대화가 정부와 의사 사이 ‘일대일’로 이뤄져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정 갈등은 이달 말을 계기로 한층 더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각 대학이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하는 시한은 이달 말까지다. 대교협이 이를 승인하면 각 대학은 다음 달 말까지 홈페이지 등에 모집요강을 공고한다. 의대 증원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는 얘기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다음 달 1일부터 강경파인 임현택 당선인 중심의 새 집행부로 재편된다. 오는 25일은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째로, 민법에 따라 ‘사직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정부가 당장은 의사들에 대한 강공을 유예하고 대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중단했던 전공의 의사면허 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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