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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원투펀치 위해... 총리가 총리를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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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존슨 총리, 협상력 높이려

호주 애벗 전 총리 무역특사 내정

한 나라의 국가 지도자였던 정치인이 다른 나라 정부를 위한 중책을 맡아 일하는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영국과 호주 사이에서 이런 생소한 일이 구체화되고 있다.

30일(현지 시각)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토니 애벗(63) 전 호주 총리(2013~2015년 재임)를 정부 기구인 무역위원회 자문관으로 내정했다. 영국·호주 언론은 존슨이 애벗을 임명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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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벗이 정식 임명되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포함한 갖가지 통상 현안에 개입할 예정이다. 영국은 EU와의 구체적인 결별 조건을 마무리하는 협상은 물론이고 미국·중국을 비롯해 주요국과 별도의 무역협정을 맺어야 하는 작업이 코앞에 와 있다. 애벗은 협상의 고비마다 직접 EU를 비롯한 상대국 최고위 인사를 만나는 존슨의 ‘무역 특사’로 활동하게 된다. 장차관 등 정부 내 공식 직위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해서 이런 일을 맡을 수 없다는 제약은 없다.

존슨이 애벗을 ‘스카우트’한 이유로는 우선 애벗의 통상 경험을 높게 샀다는 관측이 나온다. 애벗은 호주 총리로 재임한 2년 사이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핵심 3국과 모두 FTA(자유무역협정)를 최종 타결한 경험을 갖고 있다. FTA 협상은 수년에 걸쳐 지루하게 진행된다. 애벗은 한·중·일과의 막판 협상에서 속도를 내서 짧은 임기 중에 모두 마무리했다. 평소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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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애벗(왼쪽) 전 호주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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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벗은 영국과의 각별한 유대 관계도 있다. 그는 런던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호주로 건너갔다. 호주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영국 국적을 포기했던 1994년까지 37년간 이중 국적자로 살았다. 또한 영국이 자랑하는 장학제도인 로즈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이력도 있다.

일간 가디언은 애벗을 “영국인보다 더 영국에 충성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런던의 한 싱크탱크에서 연설하면서 “영국은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위대한 나라”라며 “유럽을 도와주고 구원해준 나라가 영국”이라고 했다. 브렉시트도 지지한다. 그는 지난해 존슨이 편집장을 지냈던 시사주간지 스펙테이터에 ‘노딜(no deal)? 문제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EU와 협상 없이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도 감수하겠다는 존슨을 적극 지지한 것이다. 애벗은 총리 재임 중 오래전 폐지된 호주의 기사 작위를 부활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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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가 2014년 한국과 호주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할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 참석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호주를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선물로 건네고 있다./뉴시스


존슨이 애벗을 끌어당긴 배경에는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는 만큼 영연방 국가들을 확실한 아군으로 끌어안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디언의 외교 에디터인 패트릭 윈터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영어권 다섯 나라의 정보 공동체를 말하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보다 굳건하게 만들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했다.

애벗은 지난해 총선에서 25년간 지켜온 지역구에서 패배한 뒤 호주에서 이렇다 할 공식 직함이 없는 상태다. 호주 스카이뉴스는 “영국에 귀중한 인력이 유출됐으며, 이는 스콧 모리슨 총리의 실책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애벗이 보수당 중심으로 영국 정·관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게 된 것은 호주 출신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다리를 놓아준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우파 성향인 그는 시드니대 재학 시절 ‘미친 수도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언행이 거칠어 자주 논란을 일으켰다. 총리 재임 중에도 여성 혐오 발언으로 설화(舌禍)를 겪기도 했다.

영국은 오는 12월 31일 브렉시트 유예 기간을 마치고 완전히 EU와 결별해야 한다. 하지만 넉 달 안에 모든 ‘이별 조건’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폴리티코는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겪어 영국과 EU에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애벗을 부르는 이유도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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