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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44세에 찾아온 늦둥이... “서울 하프마라톤은 내 인생 터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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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 하프마라톤 참가한 정영준(44)씨가 28일 오전 출발지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정씨는 "달리기 덕에 10년 만에 아이가 찾아왔다"고 했다.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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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결혼한 정영준씨 부부의 꿈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34세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인 만큼 어서 아이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리라 버진로드를 걸으며 약속했다. 그러나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36세에 난임 판정을 받았다. 자연 임신은 어렵다는 주치의 의견이었다.

시험관 시술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도 1회 비용이 100만~3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시술. 그럼에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배란 유도제를 직접 투여하는 ‘자가 주사’ 시간이었다. 정씨의 아내는 직접 한 달에 8~12일 동안 매일 주사를 직접 놔야 했다. 심한 고통을 동반한다. 정영준씨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했다.

2023년까지 시도한 시험관 시술이 10번. 그중 유산만 3번이었다. 임신 9주 차까지 품다가 유산한 적도 있었다. 어느새 부부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정씨는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정씨는 2021년 무렵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좋은 정자를 만드는 데 운동이 도움 된다는 이야기를 스치듯이 들었다. 만에 하나 아내가 임신한다면 버틸 체력을 기르자는 목표도 있었다. 정씨는 “너무 힘든 날들이었다. 사실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먹으면 바로 뛸 수 있는 달리기가 제격이었다.

처음에는 2㎞만 뛰어도 숨이 턱 끝까지 가득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두 부부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인터벌 러닝(빨리 뛰었다 천천히 뛰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으로 단련했다. 2㎞가 3㎞가 되고, 3㎞가 10㎞가 됐다. 어느덧 지난해 서울 하프마라톤에선 1시간 45분 51초 기록으로 21.0975㎞ 완주에 성공했다. 작년 가을 춘천마라톤 풀코스 42.195㎞도 4시간 2분에 뛰어냈다. 아내도 10㎞ 정도는 거뜬히 뛸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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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정영준(왼쪽)씨와 그의 아내. /정영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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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주치의에게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간을 비롯한 건강 상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 달리기의 힘인가 싶었다. 몸도 마음도 상해가면서 반포기 상태였던 정씨 부부는 “더 열심히 해보자”며 다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마침 11번째 시험관 시술. 거짓말처럼 아기 천사가 정씨 아내 배 속에 찾아왔다.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기에 돌입했다. 태명은 사랑이라고 지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많이 나누라는 뜻이다. “보통 임신 15주 차부터는 안정기에 진입해서 3~4주에 한 번씩 병원에 오라고 하는데, 저희는 16주에도 양수 검사를 필수로 하기로 했어요. 계속 고비 또 고비지만 아내도 아기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함께 둘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27일 오전 서울 하프마라톤 완주를 마친 정영준씨는 “작년 서울 하프마라톤은 내 인생 터닝 포인트였다. 올해 다시 이 코스를 뛰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이날도 1시간 38분 3초에 완주했다. “5월 대회는 더워서 잘 안 나가는데, 조금 일찍 기온이 높아진 탓에 더위와 싸워야 했던 대회였네요. 중간중간 힘들었지만 엄마와 아가 건강 기원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었습니다. 아이가 행복한 세상에서 재미있게,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저도 언제나 그렇듯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요.”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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