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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설왕설래] 코로나19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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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동물도 사기를 친다. 유럽이나 아시아에 서식하는 큰부전나비의 애벌레는 먼저 선물 공세로 뿔개미들의 환심을 산다. 단물을 제공하고 개미가 좋아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뿔개미는 애벌레를 친구로 여기고 자신의 양육실로 데려온다. 안방을 차지한 큰부전나비의 애벌레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개미의 애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또 청줄청소놀래미는 다른 물고기들의 입안에 붙은 기생충과 부산물을 청소하며 공생한다. 사기꾼 물고기들은 이것을 악용한다. 마치 청소해줄 것처럼 애교를 부리다 상대가 접근하면 잡아먹는다.

동물뿐이 아니다. 식물도 자주 사기를 친다. 넓은잎습지난초는 꿀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곤충을 유인할 수 없다. 난초는 이 문제를 사기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꿀샘이 있는 것처럼 얼룩무늬를 만들어 곤충을 불러들인다. 곤충은 꿀을 찾아 꽃 위를 돌아다닌다. 곤충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지만 난초는 이를 통해 수분에 성공한다. 닭의난초의 일종인 에피파크티스 헬레보리네는 애벌레가 갉아먹은 풀 냄새를 풍긴다. 애벌레가 많이 있으니 빨리 와서 잡아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말벌은 결국 허탕을 치고 만다.

거울난초는 수분을 하기 위해 섹스 전략까지 동원한다. 꽃잎 주위에 빨간 털을 달아 암컷 말벌 행세를 한다. 꽃의 크기와 모양은 암컷 말벌과 흡사하다. 수컷이 좋아하는 냄새까지 발산한다. 암컷으로 위장해 짝짓기하러 오라고 수컷을 꼬드기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혼인 빙자 사기에 해당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틈 타 새로운 사기수법이 등장했다고 한다. 사기범들은 마스크 생산업체에 한국전력 지사장 명의로 “고압선 공사 중 사고가 나 기존 전화가 끊길 수 있으니 제공한 번호로 착신 전환하라”는 공문을 팩스로 보냈다. 업체가 회사 전화번호를 바꾸자 범인들은 이 업체로 행세하면서 마스크 대금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보다 사악한 사기범의 잔꾀가 놀라울 뿐이다.

동물과 식물의 사기는 종의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인간의 사기는 종의 결속을 위협한다. 진화가 아니라 인류의 번영을 해치는 역진화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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