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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금주의역사 - 2월17~23일] 로마 기독교도들의 마지막 수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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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303년 2월23일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반포했다는 기록을 대하면 혹시 잘못 인쇄된 기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 것이 313년이어서 곧잘 혼동하기 쉬워서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탄압은 사실이고 그 강도도 가장 센 축에 속한다.

기독교 탄압이라면 누구나 네로 황제를 떠올리지만 네로의 탄압이 그의 성격처럼 즉흥적이고 무질서한 것이라면 로마 개혁에 성공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것은 치밀하고 체계적이었다.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로 악화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았으니 그 범위도 로마제국 전역이 아니라 ‘로마시’에 머물렀다.

반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것은 제국 전역이 무대가 됐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네로처럼 즉흥적인 성격도 아니다.

성격이 단호해 철저한 중앙집권적 전제정치를 선호한 그에게는 명군이라는 말과 암군이라는 말이 공존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기독교를 탄압한 자체가 그런 전제정치에 기독교가 걸림돌이 돼서였다.

당시 로마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오랜 탄압을 받고도 상당한 세력으로 부상해 있었다.

그들은 3세기 중반 갈리에누스 황제 이래 탄압을 받지 않다시피 해 4세기 초에는 전체 국민의 10%를 차지할 만큼 수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97년 모든 공직자들과 군인들에게 신전에 제물을 받침으로써 충성을 증명하라고 명령을 내림으로써 기독교 탄압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 명령에 반대한 자들을 처형한 그는 303년에 지금의 터키 땅인 니코메디아의 황국에 불이 나자 이를 기도교도들의 소행으로 몰아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는 또한 교회를 철거하고 기독교도 재산을 압류하는 등 체계적으로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스스로 황제위에서 자진 은퇴한 것도 그다운 일이었다.

양평(언론인)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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