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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詩想과 세상]병상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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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病床)의 아침, 창밖에 눈발이 날립니다

병상에 누워 바라보는 바깥세상

한순간, 첫눈이구나 첫눈이구나

마음은 설레이고 육신의 고통은 사라져

창밖에 날리는 눈송이를 따라 나는 춤추는 인형

스스로 창턱에 올라서서

눈에 보이는 세상 이 계절의 풍경 앞에

희열의 눈물이 흐릅니다

아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박이도(1938~)

경향신문

병석에 누워 지내던 시인은 창 바깥에 흰 눈발이 흩날리는 것을 본다. 겨울 들어 처음 내리는, 잘고 가늘게 내리는 눈을 본다. 그 순간 공중에서 춤추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들떠 두근거리고 흥이 일어난다. 그러고는 아파서 병상에 있지만 살아있는 이 순간이 고맙고 기뻐 눈물을 흘린다.

어제 수선화가 겨울의 두꺼운 땅을 뚫고 뾰족하게 화살촉처럼 솟는 것을 보았다. 꽃나무가 꽃망울을 맺은 것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감격과 흥분이 얼마만인가!)

박이도 시인은 시 ‘어느 인생’에서 “이제야 내 뒷모습이 보이는구나/ 새벽안개 밭으로/ 사라지는 모습/ 너무나 가벼운 걸음이네/ 그림자마저 따돌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라고 썼다. 비록 어디인가로 총총히 사라지더라도 이 시에서처럼 우리 삶의 보행이 순간순간 가벼운 걸음이었으면 한다. 작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감격하면서 춤을 추는 눈송이처럼 설레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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