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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박효재의 ‘딥다 파기’]모로코·수단, 이스라엘과 손잡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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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가 압둘팟타흐 알부르한 수단 주권위원회 위원장과 3일(현지시간) 우간다에서 정상회담을 주선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이날 엔테베 대통령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엔테베|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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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과거 적대관계였던 북아프리카 이슬람권 국가들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네타냐후 총리가 모로코와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에는 수단의 군·민통합 과도정부기구인 주권위원회 위원장 압둘팟타흐 알부르한을 만나 양국 관계 개선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행보는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과 이란을 더욱 고립시키고, 극우층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모로코의 서사하라 영유권 인정, 수단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 미국의 지지를 보장하면서 이뤄낸 성과다. 수단·모로코가 네타냐후 총리를 징검다리 삼아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면 역내 혼란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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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팟타흐 알부르한 수단 주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0월30일(현지시간) 수도 하르툼 외곽에서 열린 군사훈련을 참관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르툼|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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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는 2일 우간다에서 알부르한 수단 주권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남미에서 출발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자국 항공편의 수단 영공 통과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네타냐후 정부는 지난해 관계를 정상화한 차드에 이어 인접국 수단까지 이어지는 하늘길을 열면 지금보다 비행시간을 최소 3시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로코와 협상은 2018년 9월 유엔총회 때부터 물밑접촉이 이뤄져 최근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진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와 친분이 있는 모로코의 유대계 식품유통업자 야리브 엘바즈가 양국 정부 당국자 간 만남을 주선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부터 모로코 관계 정상화를 업적으로 내세우려 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아랍 매체들이 불리하게 여론을 몰고 가고,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서 양국 관계 정상화 논의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수단과 모로코 모두 오랜 기간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였다. 수단은 이스라엘 건국전쟁(1948~1949)과 제3차 중동전쟁(1967년) 당시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다. 이스라엘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지부도 수용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하마스로 무기를 밀반입해주는 통로로도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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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6세 모로코 국왕(왼쪽)이 지난해 3월30일(현지시간) 수도 라바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라바트|로이터연합뉴스




모로코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스라엘 저항운동(인티파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를 무차별 유혈진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이후 모로코가 이스라엘 주재 대표부를 폐쇄하면서 양국 관계는 단절됐다. 무함마드 6세 현 모로코 국왕은 2017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포했을 당시, 역내 안정을 저해하는 어떤 조치도 삼가달라고 말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0년 간 수단, 모로코는 물론 아프리카 전체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주로 이들 국가들에 절실한 스마트 농업, 수자원 관리, 첨단기술과 의료서비스 부문 정보를 공유하며 환심을 사려했다. 그럼에도 수단, 모로코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랬던 양국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으로 돌아선 데에는 네타냐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각별한 관계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악시오스는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실제로 메이르 벤 샤바트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등 정부 관료들이 양국 정상의 돈독한 관계를 모로코·이스라엘 간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 돌파구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로코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국제사회 동의가 필요한 정치적 사안을 두고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벤 샤바트 안보보좌관은 미국 정부 관료들을 접촉해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지지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프리카의 이란 대리무장세력으로까지 지목되는 수단도 트럼프 정부의 지지를 얻어내려고 이스라엘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수단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 미국의 경제 제재에서 풀려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오마르 알바시르의 30년 군부독재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끝난 뒤에는 군부조차 이란과 거리를 두는 상황이다. 중동전문 매체 알모니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알부르한 위원장이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한 주된 목적은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에 따른 미국의 대수단 제재 해제에 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정상회담을 위해 우간다로 떠나기 전날인 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알부르한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을 종합하면 이 회담에서 수단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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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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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단·모로코가 이스라엘과 트럼프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면 후폭풍이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클 수 있다. 수단이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전제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된다면 당장 팔레스타인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은 지난 3일 알부르한 위원장과 네타냐후 총리의 회동을 두고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아랍의 평화구상에서 노골적으로 이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란에 우호적인 이라크·시리아와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모로코의 서사하라 영유권 인정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입장이 갈리는 첨예한 사안이라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서사하라는 1975년 스페인이 식민통치를 포기한 이후, 온건 이슬람 국가를 내세우는 모로코와 사회주의 체제의 독립국을 세우려는 살라위족 단체 폴리사리오해방전선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모로코와 폴리사리오는 1991년에 휴전에 합의하고 휴전·선거관리를 위한 ‘유엔 서사하라 총선지원단(MINURSO)’까지 꾸렸다. 하지만 결국 주민투표 참가자 자격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현재까지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폴리사리오가 서사하라에 세운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60여 개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모로코는 지속적인 외교 노력을 전개하며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의 승인 철회를 얻어냈다. 양측의 외교전은 미국이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할 경우 더욱 격화될 수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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