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9 (월)

0.0001%의 기적, 네 배의 행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하온·하민·하음·하준이네의 첫 설]

자연임신으로 찾아온 네쌍둥이… 3시간도 못자 몸은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설레고 선물같아요

아빠는 넷둥이 위해 승합차로 바꾸고 할아버지는 은퇴를 4년 미뤘답니다

두번의 유산으로 아픔 겪은 부부 "한번에 네명, 하늘이 내려준 축복"

이한솔(31)씨는 작년 말 7인승 승합차를 샀다. 아이들을 태우고 다닐 차인데 시중에서 파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로는 부족해서 IT 벤처 회사 디자인팀장인 본인이 손수 만들어 뒤 유리창에 붙였다. '넷둥이가 타고 있어요.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네쌍둥이요~.'

조선일보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이한솔(31)·나혜승(31)씨 부부가 작년 12월 22일 네쌍둥이를 낳았다. 자연 임신으로 낳은 사란성(四卵性) 쌍둥이 태명은 봄·여름·가을·겨울. 아빠가 총각 시절 아이 넷을 낳겠다며 지은 태명인데 현실이 됐다. 그래서 이씨 별명은 ‘춘하추동 아빠’다. 지난 19일 여섯 식구가 사는 아파트 안방에서 아빠(사진 맨 왼쪽)와 엄마가 네쌍둥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아빠 옆에 태어난 순서대로 누워 있는 봄(하온)·여름(하민)·가을(하음)·겨울(하준) 머리맡에는 아빠 친구가 선물한 인형 네 개가 놓여 있다. /장련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갑내기 아내 나혜승씨는 지난해 12월 22일 네쌍둥이를 낳았다. 시험관에서 수정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체외수정(시험관 아기)이나 남성의 정자를 여성의 자궁 안에 넣어주는 인공수정 방식이 아닌 자연 임신이다. 밤 10시 29분부터 32분까지 1분 간격으로 체중 1.4∼1.8㎏의 이하온(아들)·하민(아들)·하음(딸)·하준(아들)이 제왕절개 수술로 나왔다. 이씨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라는 뜻에서 '하' 자 돌림으로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 태명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 이씨는 '춘하추동 아빠'라는 별명을 얻었다. 넷의 생김새가 다 다른 사란성(四卵性) 쌍둥이다. 네쌍둥이가 태어나 첫 설을 맞았다. 이씨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매일이 설렘이고 선물 같다"고 했다. 네쌍둥이는 통계청이 별도 집계를 하지 않을 만큼 귀하다. 의료계는 네쌍둥이를 자연 임신해 무사히 출산할 가능성을 80만분의 1(0.000125%) 정도로 본다.

◇네쌍둥이와 치르는 '행복한 전쟁'

지난 15일 네쌍둥이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나와 경기도 부천시의 집으로 왔다. 20평형대 주공아파트는 아빠와 엄마, 네쌍둥이의 행복한 전쟁터로 변했다. "아내가 하온이랑 하민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동안 제가 하음이랑 하준이에게 분유를 먹입니다. 그다음은 하온이랑 하민이가 분유를 먹고 하음이랑 하준이는 기저귀를 갈죠." 하루 3시간 정도밖에 못 자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이씨는 결혼 전부터 아내 나씨에게 "아이 넷을 낳아서 태명을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짓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결혼 후 부부는 두 번이나 유산(流産)의 아픔을 겪었다.◇"겁도 났지만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낳기로 했죠"

지난해 6월 12일. 임신 진단키트에 임신을 뜻하는 두 줄의 붉은색이 뚜렷했다. 부부는 반가운 마음에 산부인과로 달려갔는데 의사는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아기 집이 넷인데요…."

조선일보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넷둥이가 타고 있어요 - 작년 12월 네 쌍둥이 아빠가 된 이한솔(31)씨는 7인승 승합차를 샀다. IT 회사 디자인팀장인 이씨가 네 쌍둥이를 그린 스티커를 직접 만들어 뒤 유리창에 붙였다.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 아파트 주차장의 승합차 운전석에서 이씨가 엄지를 들어올리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쌍둥이나 네쌍둥이는 조산(早産)이나 유산 위험이 커서 일부 태아를 '선택적으로 유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먼저 떠난 두 아이 대신 하늘이 한꺼번에 넷을 내려줬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일부만 낳았다면 낳지 않은 아이 생각이 계속 날 것 같았죠"라고 말했다.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쌍둥이 전문가 전종관 교수는 "50㎏이었던 엄마 체중이 85㎏까지 불어 걷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고혈압, 단백뇨 같은 임신중독증 증세가 나와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태아가 하나인 경우 보통 임신 40주 차에 낳는데, 네쌍둥이는 30주 차에 미리 낳는다. 무게를 산모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일찍 낳으면 아이에게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전 교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엄마가 아이들 잘되라고 32주 차까지 눈물겹게 버텼다"고 했다.

◇온 동네 경사… "건강하게 자라라"

동네와 회사에서도 네쌍둥이 소식은 경사다. 출생신고를 하려고 주민센터를 찾은 날 동네 주민 10여 명이 이씨에게 유기농 비누 상자와 육아용품 세트, 꽃다발 등을 선물했다. 주민들은 "애들은 건강하냐" "쌍둥이 엄마는 괜찮냐" "우리 동네에 경사가 났다"면서 함께 기뻐했다. 전 직원이 6명인 이씨 회사에서는 보너스로 700만원을 줬다.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네쌍둥이의 분유 등을 전부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은퇴할 예정이었던 네쌍둥이의 할아버지인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광석(61)씨는 "손자가 한꺼번에 넷이나 생겨 돈 들어갈 곳도 많을 텐데 남아달라"는 후배 연구원들 성화에 은퇴를 4년 뒤로 늦추기로 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정년이 만 61세인데 원하면 만 65세까지 더 근무할 수 있다. 쌍둥이들의 외할아버지 나민수(61)씨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 매일 함박웃음이라고 했다. 이씨 부부는 "네쌍둥이가 자기만의 꿈을 실현하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석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