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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사설] 정준영 판사의 ‘준법감시기구’ 집착,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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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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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가 2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게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이유로 형량을 깎아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재판부다. 이 부회장 판결의 ‘예고편’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판부는 이중근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1심 선고 형량인 징역 5년에서 절반을 줄여준 것이다. 이 회장은 서민 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 가격을 부풀려 부당이득을 챙기는 등 4300억원대의 횡령·배임을 한 혐의로 2018년 2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부영그룹이 2018년 5월 준법감시실을 신설하고 2020년 1월 준법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외부인과 위임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준법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비록 재판부가 이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기는 했으나, 준법감시기구를 감형 요인으로 반영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 8장을 근거로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권고했고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 대법원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든 양형 기준이 버젓이 있는데 듣기에도 생경한 미국의 양형 기준을 적용하려는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은 재벌 총수에 대한 봐주기 판결을 바로잡고 법 앞에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양형 기준을 마련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법원 내부에서도 정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 8장은 ‘개인 범죄’가 아니라 ‘기업 범죄’가 대상이다. 제목부터 ‘조직에 대한 선고’다. 반면 ‘이중근 사건’과 ‘이재용 사건’은 개인 범죄다. 또 범행 당시 준법감시기구를 운영하고 있었을 경우 감형을 고려하는 것이지 사후에 준법감시기구를 만들었다고 감형을 해주는 규정도 없다.

준법감시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저지른 죄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준법감시기구는 미래를 위한 개선 대책이고 재판은 과거의 범죄를 단죄하는 것이다. 서로 차원이 다르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삼성그룹 내부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종보 변호사가 22일 토론회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처벌이 이뤄지고 있었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옳은 지적이다. 정 부장판사도 귀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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