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이란 反美시위, 순식간 反정부시위로… 트럼프 ‘정치 승리’? [세계는 지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 ‘솔레이마니 암살’과 이란의 ‘우크라 여객기 격추’ 후폭풍

트럼프 “美 대사관 4곳 공격과 관련”/ ‘임박한 위협’ 주장에도 불신 높아져/ 민주당 중심으로 암살 정당성 논란도/ 대선에 앞서 보수층 결집 강수 지적/ 이란 보복 나섰지만 확전은 피한 듯/ 이라크에 공습 예고… 美 사상자 없어/ 혁명수비대 공격, 적기 오인 격추로/ 상황 반전… 트럼프, 시위대 지지 나서

세계일보

미국이 이란 군부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 공격으로 암살하고, 닷새 후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보복 공습하면서 촉발된 양국 간 전면전 우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연설 이후 잦아들었다. 아울러 이란 테헤란에서 출발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혁명수비대가 미국의 맞대응에 따른 크루즈 미사일로 오인해 격추한 사실이 확인됐다. 솔레이마니 암살 후 이란에서 이어진 반미시위는 순식간에 반정부시위로 변했다. 솔레이마니 암살을 둘러싸고 빚어진 논란을 되짚어봤다.

◆왜, 지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나… ‘임박한 위협’ 논란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의 정당성으로 제시한 ‘임박한 위협’과 관련해 “이라크 바그다드 등 4곳의 미 대사관에 대해 계획된 공격과 관련이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그런 증거는 못 봤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WP 등은 솔레이마니 암살은 미 국민의 안전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를 위한 작전이라고 평가해 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비용 문제를 들어 중동에서 발을 빼겠다고 수차례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은 일관적이지 않은 미국 중동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일보

미국이 지난 2일(미 동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해 그가 탄 차량이 불타오르고 있다. 이라크 총리실


트럼프 대통령은 암살 사실을 공개한 날 트윗을 통해 “솔레이마니는 미국인 수천 명을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혔고 더 많은 살해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잡혔다”며 “수년 전에 그를 없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란의 위협적 행동이 임박한 상황이었다는 정보에 기초한 작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미국인 1명을 숨지게 한 로켓포 공격의 배후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지목한 에스퍼 장관도 “이번 공격은 향후 이란의 공격 계획을 억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대선 캠페인에 앞서 보수층의 결집을 위해 대이란 강경책이라는 무리한 작전을 택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CNN방송은 이란에 대한 최대압박 전략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선제조치 옵션을 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해 6월 이란의 미국 무인기 격추에 보복공격 승인 직전까지 갔다가 추가제재로 대응했는데, 당시 미국 내 강경파의 불만을 샀다고 CNN은 설명했다.

솔레이마니 암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임박한 위협’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폼페이오 장관은 “워싱턴DC 공격 징후가 있었다”고 추가로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미 대사관 4곳의 공격 계획과 연관이 있다면서 미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당한 작전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에스퍼 장관이 이를 부인한 셈이다.

미 언론은 솔레이마니 암살작전 당시 예멘에서 활동하는 압둘 레자 샤흘라이 사령관 암살작전이 동시에 진행됐지만 실패했다면서 공세를 확대하고 있다. 중동 지역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이란을 이끌어 온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왜 이런 민감한 시기에 이란 군부의 실세를 처단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대선 캠페인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이번 작전에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세계일보

◆미군 사상자 없는 이란의 보복 공습

이란이 보복 공습에 나섰지만 미군 사상자가 없었던 배경을 두고도 평가가 갈린다. 미군의 솔레이마니 암살에 보복을 다짐한 이란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이라크군에 따르면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기지와 연합사령부가 있는 에르빌 기지로 22발의 미사일이 발사됐다.

이란 국영방송은 ‘미군 80명을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보복 공습 이튿날 대국민성명에서 미군 사상자는 없다고 확인했다. 미사일이 주차장 등에 떨어졌지만 큰 피해가 없었고, 헬리콥터 한 대만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최근 두 달 동안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 등을 매우 정밀하게 공습해 왔다는 점에서 일부러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은 백악관 대책회의에서 ‘이란이 보복 공습에 나서면서도 확전은 피하려고 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란이 보복 공습 1시간여 전에 이라크 측에 공습 사실을 알렸고, 이라크 측은 다시 미국에 공습 예고를 전달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WP 등은 백악관이 공습 3시간여 전부터 공습 징후를 알고 회의에 들어갔다고 전했고, 폭스뉴스는 “미군이 조기 경보를 울려 대피소로 이동시키는 작업 등을 해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세계일보

이란이 7일 이라크 미군기지 두 곳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비례적 보복’에 나서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참모진 및 군 수뇌부와 긴급회의를 갖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AP·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는 보복 공습 후 사상자가 없자 “이번 작전은 미국인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게 아니고 미군의 군사 장비를 파괴하는 것”이라면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인명을 노린 것으로 보이나 미국의 대응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미군 사상자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맞대응을 접고 추가 제재에만 나선 배경은 뭘까. NYT는 “이란이 보복 공습 직후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추가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비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 기지 공격에 나서지만 추가적인 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미국의 맞대응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보복 공습 직후 “괜찮다.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는 트윗을 올리고, 다음날 연설에서 “이란이 물러나는 것 같다”며 군사작전 대신 경제제재 방침을 발표한 배경에도 이란의 비밀 메시지가 있었던 셈이다.

◆이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트럼프 결정에 영향 줬나

이란의 보복 공습이 있은 지 5시간여 뒤에 테헤란 인근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고는 혁명수비대가 적기로 오인해 격추한 것으로 드러나는 과정에 이란의 민낯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

당초 이란 당국은 탑승객 176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객기 추락에 대해 “이륙 직후 엔진에 불이 붙었다”면서 기체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복 공습 직후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격추 의혹이 이어졌고, 여객기가 무언가에 맞는 듯한 사고 당시 영상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세계일보

미국이 군사적 반격 대신 경제제재를 택하면서 확전 위기는 피했으나,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한 사실을 시인한 뒤인 12일에도 테헤란 영국대사관 앞에서 친정부 시위대가 솔레이마니 사진을 들고 복수를 다짐하는 등 양국 간 긴장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테헤란=신화·연합뉴스


미국과 캐나다 등은 격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지만, 이란은 블랙박스를 미국에 넘기지 않겠다면서 버텼다. 트럼프 행정부 등이 공식적으로 격추 의혹을 공개하고, 사고 사흘 만에 이란 혁명수비대의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대공사령관이 격추 사실을 시인하면서 어이없는 참사로 남게 됐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물론 우크라이나도 이번 사고 초기부터 이란이 여객기를 격추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이란의 눈치를 살피면서 의혹을 밝히는 데 주저했고, 미국은 ‘이란의 자멸’을 조용히 기다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보복 공습에 대한 맞대응 여부를 고려하고 있을 무렵 어이없는 여객기 격추 의혹을 알게 되면서 군사대응을 접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번 여객기 격추사건 이후 이란 내 반미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이란 지도자들에게 반정부 시위자들을 죽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미 수천명이 당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거나 투옥됐고 세계는 지켜보고 있다”며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