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박정진의청심청담] 전제주의, 전체주의, 문명전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亞 문명권 사회전체주의 기승 / 中 공산당 독재체제 강화 일변 / 韓 권력엘리트 친중성향 위험 / 국민 선택에 ‘자유주의’ 달려

지구촌이 일일생활권에 들어간 오늘날 동·서양문명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일까.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보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문명권의 충돌로 보는 것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혹은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보다는 서구초기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발생한 공산사회주의가 아시아적 전제주의와 결합해 유라시아대륙에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일보

박정진 문화평론가


자유와 민주, 산업과 자본, 그리고 과학을 동반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과 원자(atom)를 기초로 하는 근대자본주의문명은 오늘날 세계문명의 주류가 됐지만 동시에 사회전체주의문명이라는 역사적 퇴행을 막지 못했다. 백 년 전 소련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산사회주의는 소련의 붕괴(1991년)로 해체되는 것 같았지만 뜻밖에도 수도(水稻)농업사회의 전통을 가진 아시아문명권에서는 도리어 사회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아시아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근대성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좌파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에서 방황하고 있고,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공산당독재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홍콩사태(자유화물결)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일국양제)의 미래에 의구심을 품게 하고 있다. 미국의회에서 통과한 홍콩인권법과 위구르인권법은 아시아적 전제주의의 전체주의로의 이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동양은 아편전쟁(1840년)에서 중국이 근대를 주도한 서구문명에 완전 항복함으로써 종속적인(식민지적인) 위치에 들어갔고, 일본만이 화혼양재(和魂洋材)의 성공으로 제국주의의 편에 들어갔다. 그 후 100년, 한국과 중국은 경제개발의 성과와 기술문명에 힘입어 물질문명은 선진국을 따라잡았지만 아직도 정신문명은 전제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과 자유가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체제, 북한은 왕조전체주의체제가 됐고,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무늬만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의 다수가 아직도 농업-왕조사회의 백성의식, 혹은 지주-소작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은 취임만 하면 쉽게 왕이 돼버린다. 한국에서 개인의 자유와 민주와 인권이 선진국에 걸맞게 성장했는지는 의문이다. 동양에서는 항상 개인보다는 집단(패거리)이 앞선다. 전제주의에서 전체주의로의 향배는 민도(民度)에 달렸다. 왕이 국가의 주인인 전제주의사회에서 자유시민사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민의식의 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인독재의 전체주의로 회귀할 위험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흔히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시차를 문화지체현상(cultural lag)이라고 한다. 유교자본주의로 통하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경제(과학기술)발전은 정신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진입에 완전히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공산당독재체제는 주변국마저 전체주의의 블랙홀로 몰아가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최근 한국 지식권력엘리트들의 친중적 경향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엔 성리학전통의 위선과 권력엘리트의 자기기만이 주효했지만. 귀족노조와 좌파귀족과 강남좌파들의 좌경적 행태는 국가자살을 염려케 할 정도이다. 어쩌면 홍콩보다 못한 민주시민의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하게는 소비에트체제의 붕괴로 자유화된 동유럽보다도 못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결국 노예사회로 역주행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군사독재에 저항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한국의 가톨릭은 지금 사회주의로의 위험 속에서도 침묵하고 있다. 이는 범민주운동권세력의 위선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가 ‘종의 기독교’에서 ‘주인의 기독교’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한국의 밝은 미래는 보장받지 못한다. 일부 가톨릭신부들이 민족과 통일을 명분으로 좌파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가톨릭의 해방신학과 공산사회주의(러시아정교)는 서로 통하는 것인가.

결국 한 나라가 전체주의로 갈 것인가, 자유주의로 갈 것인가는 국민(백성)의 선택에 달렸다. 개인주의와 자유-자본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산업이 발달하고 소득이 올라가도 자유민주주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전체주의적 괴물에 저항하지 않으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에 속아서는 안 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악마 같지만 속으로 천사이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는 겉으로는 천사 같지만 속으로 악마이다.

최근 중국을 중심한 동양사회의 사회주의(전체주의)로의 역주행을 보면 서양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사회는 변형된 족벌주의(nepotism)에 빠져 있고, 시민적 개인(individual)은 실종돼 있다. 전제-전체주의의 유혹에 빠져 있다. 서양의 개인-이기주의를 넘어 가족공동체윤리를 되찾아야 하는 동양이 전체주의로 빠진다면 이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과 같다. 한국은 잘못된 남성주의인 폭력과 잘못된 여성주의인 질투에 의해 점차 망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마르크시즘과 오도된 페미니즘의 결합은 오늘날 한국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