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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로봇이 온다

“배달로봇, 차도·인도 통행 불가”… 신산업 갈길 막는 정부 [혁신성장 발목 잡는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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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는 '제2의 타다'들 / 도로교통법상으론 車도 인간도 아냐 / 원격의료·자율주행 등도 ‘法앞에 눈물’ / 모바일 활용 ‘카톡 챗봇주문’ 서비스 / 국세청 유권해석에 술은 주문 막혀 / 제도가 신산업 출현 속도 못 따라가 / 샌드박스 등 적극 활용 목소리 높아

2014년 10월 설립된 ‘나우버스킹’은 웨이팅 서비스로 유명하다. 고객이 매장 앞에 있는 태블릿에 연락처를 남기면 줄을 서지 않고 대기시간을 활용하다 ‘카카오톡 알림’을 받고 입장하는 방식이다. 업체는 이 서비스를 앞세워 지난 11월 기준 누적 사용자 1000만명, 가맹점 1800여개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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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사람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최근 암초를 만났다. 나우버스킹은 올해 3월부터 손님이 매장에 입장하기 전이나 직후에 간편하게 모바일로 주문·결제할 수 있는 ‘카카오톡 챗봇주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서비스에서 ‘주류 판매’가 규제에 걸린 것이다. 국세청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는 미성년자의 주류 구매나 탈세 우려 때문에 주류의 통신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도, 술은 대면으로 받는 방식인데 주류의 통신판매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나우버스킹 관계자는 16일 “현재 카카오톡 챗봇주문 서비스는 음식은 모바일로, 술은 직원에게 주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이 관련 규정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듣고 현재는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측은 “대면 인도 방식의 카카오톡 챗봇주문 서비스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위해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산업 발목 잡는 ‘규제’…곳곳 그물처럼 얽혀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위해 혁신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 창출의 싹을 짓밟는 규제는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위기에 처한 타다뿐 아니라 나우버스킹처럼 규제로 인해 좌절하고 있는 ‘제2의 타다’는 계속 양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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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발표한 ‘신산업 규제 트리와 산업별 규제 사례’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선정한 9대 선도사업 중 바이오·헬스, 드론,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4개 분야에서만 각종 규제로 신음하는 국내 신산업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가령 정보기술(IT)과 의료산업을 융복합한 바이오·헬스의 경우, 거동이 불편한 고혈압 환자인 노인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라면 혈압 등 생체신호를 전송해 병원에서 상시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개인 의료정보를 병원 외부 서버에 보관·전송하는 것이 제한된다. 원격 모니터링 수가에 관한 규정도 미비하다. 또한 미국에서는 환자가 긴급 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가 원격으로 의료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온라인으로 혈압약을 주문하고 배송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불가능하다. 원격의료를 받으려 해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환자 데이터를 수집·활용할 수 없고, 의료법상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진료도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약사법에 따라 처방받은 약을 원격으로 조제하거나 택배로 발송할 수도 없다.

AI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주행테스트, 정밀지도 활용, 사고 시 처리 규정까지 제도를 완비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도로교통법과 관련 제도에 막혀 있고 보험 관련 규정도 없어 토대 자체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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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투자 플랫폼만 제공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규제 인프라가 없어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업으로 분류돼 금산분리를 적용받고 있고, 자율주행 배달로봇은 차도 인간도 아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도로주행도, 인도통행도 불가능하다.

◆신산업 규제개혁 위해서는

SGI는 신산업 규제애로 해결을 위해선 △‘대못규제’의 우선적 해결 △‘다부처 협업 강화’를 통한 중복규제 일괄 개선 △사회갈등 분야에서 ‘규제 혁신제도의 적극 활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업계에서는 특히 대표적인 대못규제인 ‘데이터 3법’의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을 의미하는 데이터 3법은 20대 국회 여야 대표가 지난 11월에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에서 통과가 불발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뒤처진 신산업 분야에서 경쟁국을 따라잡으려면 데이터 3법의 조속한 입법이 필요한데, 지금 국회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국회가 조속히 제자리를 찾고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데이터 활용기반을 확충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해 중복규제를 일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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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나 공유경제처럼 규제 인프라가 미비하고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첨예한 분야에 대해서는 규제 샌드박스·자유특구 등 혁신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SGI 선병수 과장은 “강원도의 경우 원격의료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지만 참여를 결정한 의료기관이 아직 한 곳에 불과하다”며 “시범사업의 참여나 실패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는 보완조치나 기득권 집단을 설득할 수 있는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불법’ 낙인 찍히자 줄줄이 해외로… 동남아 진출한 ‘타다’는 승승장구

우리나라는 법에서 허용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산업은 관련 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불법’ 낙인이 찍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이를 의식한 스타트업들이 외국으로 줄줄이 떠나고 있다.

16일 스타트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쏘카의 자회사 VCNC의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가 ‘불법영업’으로 내몰려 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한 것과 달리 ‘엠블랩스’가 동남아시아에서 선보인 같은 이름의 ‘타다(TADA)’ 서비스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싱가포르,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이용자 50만명과 기사 6만명을 확보했으며, 최근에는 벤처캐피털로부터 56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정도로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다.

엠블랩스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 ‘엠블(MVL)’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 생애 주기에 따라 차량 주행, 정비 등 핵심 데이터를 블록체인을 통해 연결하고 암호화폐 ‘엠블 코인’을 제공한다. 이 코인은 엠블 생태계 안에서 정비, 보험, 공유 등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으며,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에서 현금화할 수도 있다.

엠블랩스의 타다는 엠블을 기반으로 한 수수료가 없는 차량호출 서비스다. 차량을 보유한 일반인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공유서비스를 통해 택시처럼 요금을 받고 고객을 태워준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이 기사 회원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과 달리 타다는 수수료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엠블 코인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암화화폐공개(ICO)가 금지돼 있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엠블랩스는 ICO 공개를 허용하고 블록체인 사업을 장려하는 싱가포르에서 지난해 7월 타다 서비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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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일본에 진출한 에이치투오호스피탈리티(H2O)는 일본에서 온·오프라인 통합 숙박사업을 벌이고 있다. H2O가 관리하는 객실은 도쿄, 오사카, 삿포로, 오키나와, 후쿠오카, 교토 등 일본 전역에 4500실에 달하며, 전문 하우스키퍼 등이 운영·관리하고 있다.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기업(OTA)인 라쿠텐 라이풀의 매니지먼트 대행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웅희 H2O호스피탈리티 대표는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 Asia)’에 선정된 바 있다.

스타트업계와 벤처업계 생태계 조성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조금 더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부처 간 영역 침범의 소지가 있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현재 산업융합, 정보통신기술, 금융, 규제자유특구 4개 영역으로 나눠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거나 면제해주는 ‘규제샌드박스’가 운용되고 있는데, 중기부는 그중 규제자유특구만 맡고 있다. 규제자유특구는 지역단위로 핵심규제들을 패키지로 완화해 비수도권 지역의 신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제도다.

김선영·우상규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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