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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신율의 정치 읽기] 투사 출신 심재철 등판…제1야당 독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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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 12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세금 도둑 민주당, 예산 날치기 문희상”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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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의원 심재철 의원이 제1야당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심재철 의원은 ‘80년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운동권의 핵심 리더였다. MBC 기자 시절에는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고, 1992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586의 원조 격인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그의 인생 전반은 ‘싸움’으로 점철됐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야당 공격수로 존재감을 나타냈다. 스스로도 “선수(選數)에서나 민주화 운동 경험에서나 더불어민주당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는다”면서 ‘싸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런 인물이 제1야당 원내대표가 됐으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카운터파트를 만났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이른바 ‘4+1’ 합의를 내세우며 12월 10일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당은 극렬히 반발한다. 예산안 통과 강행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또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도 심상치 않다. 여권이 내우외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는 배경이다.

먼저 한반도 문제를 보자.

12월 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 실험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서해위성발사장이 동창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ICBM과 관련된 실험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북한의 행동은, 12월 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지만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에는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 “북한을 지켜보겠다” 하더니 급기야 8일에는 “김정은은 영리하다. 하지만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라고 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레짐 체인지를 언급한 것이다.

북한의 응답도 점점 거칠어진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12월 7일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했고, 9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은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을 협상 직전 쌍방 간 힘겨루기로 봐야 할까. 아니면 ‘더 이상 협상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 모르겠다.

과거 북한의 협상 전략을 생각해보면,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일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미국이다. 북한이 설사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다 해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까지 꺼내드는 것을 보면, 미국은 북한의 현재 태도를 전술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 중 하나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중국 배후론’이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 배후에는 중국이 있을 것이라 미국이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한의 강경한 입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이 북한 도발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를 소집하는 것도 북한 도발 규탄 대열에 중국을 끌어들여 꼼짝하지 못하게 하려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우리 정부 입지도 상당히 좁아진다.

12월 7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통화했다.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 요청으로 이뤄졌다. 양국 정상이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통화 직후 트럼프 대통령 반응을 보면, 미국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 데 있어 우리 역할을 크게 기대하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가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북 회유 카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홍콩 사태가 아직도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사태가 대만 총통을 결정하는 선거가 있는 내년 1월까지 지속될 경우, 중국은 홍콩에 대해 모종의 결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때 중국은 북한 카드를 활용해 세계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할 수 있다. 대만 총통으로 반중국 성향 인물이 선출되고 더불어 홍콩 사태가 지속되면, 위구르를 비롯한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 등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그 이전에 홍콩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 도발을 오히려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중국 역할은 물 건너간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지금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 평화 문제 당사자로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다.

국내 정치도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특히 여권의 예산안 처리 강행은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여당은 4+1이라는 협의체가 합의한 안(安)대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4+1이라는 임의 협의체 합의대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행위는 정치적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과의 예산안 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최소 우리나라 유권자 3분의 1 이상을 내쳐버린 상태에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선거에서 특정 정당에 표를 던지는 행위는 자신의 의사를 해당 정당이 대변해달라는 의미다.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을 정도의 의석을 확보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숫자의 유권자 이익을 국회에서 대변하라는 의미다. 국회가 교섭단체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도 그런 뜻이다. 소수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 의사가 무시돼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 의사가 과대 대표돼도 상관없다는 뜻 역시 아니다. 어떤 정당이든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 지분만큼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 3분의 1 이상 지지를 받은 정당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모습이 아니다. 미국이 이른바 셧다운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산안 협상을 벌이는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미국도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는다. 예산안이 기일 내에 합의되지 못할 경우 대부분 정부 기관들이 폐쇄되는 ‘셧다운’이 발생하는데, 이런 사태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미국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 간 줄다리기가 그만큼 심하다는 얘기다. 이런 셧다운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예산안을 합의 통과시키는 이유를 여당과 범여권은 생각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선거법 개정을 반대하는 한국당은 악이고 찬성하는 측은 선이라고 주장한다. 옳은 접근법이 아니다.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주장하는 측은, 선거법이 개정되면 다양한 정당이 의석을 점유할 수 있어 다양한 의견을 제도권에 반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을 놓고 볼 때 그런 장점을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일부 정당이 이른바 범여권이라 불린다. 이는 범여권 정당과 현재의 집권 여당 정치적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래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도에 반영된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결국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측도 정치공학적 이해관계 때문이고 찬성하는 측도 정치공학적 이익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법안을 제1야당을 제외하고 거듭 강행 처리하면 또다시 정치는 사라지고 거리 투쟁만 남게 될 것이다. 더구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심재철 원내대표 체제에서 투쟁의 강도가 더욱 거세질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선거까지 여권이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아우성만 남은 상황에서 여당은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운명이다. 순탄치 않더라도 터널의 끝이 보이기만 한다면 괜찮을 텐데,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8호 (2019.12.18~2019.1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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