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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보니하니’가 보여준 방송가 청소년 인권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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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경쟁 속에 불쾌한 내색조차 못해…정신건강 위험 노출

위협을 장난으로 취급하는 성인들 현장 감수성 부족도 문제

공중파·유튜브 출연자 ‘인권·노동권 보장 가이드라인’ 필요

경향신문

지난 10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의 한 장면. 성인 남성 출연자가 청소년 여성 출연자를 때리는 듯한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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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TV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보니하니)의 성인 남성 출연자들이 청소년 여성 출연자를 성희롱·폭행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노동환경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인권·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아동·청소년이 방송의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연령·지위 등 위계에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실제 폭행이 이뤄졌는지 여부를 떠나 나이 많은 남성이 위협을 가했다는 것만으로 아동·청소년 출연자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며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아이돌이 선망의 직업이 된 것처럼 <보니하니>에 출연하는 청소년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일을 이어가고 싶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출연을 위해 경쟁하는 아동·청소년 연령대도 낮아졌다. 2003년 시작한 <보니하니>의 ‘하니’ 역은 원래 20대에게 주어졌다가 2011년 7대 하니부터 10대가 맡았다. 주로 만 15~16세 여성 청소년이다. 경쟁은 치열하다. 2016년 12대 하니를 뽑는 오디션은 10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경쟁 구도에서 청소년 출연자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불쾌한 티를 내거나 이견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방송 현장의 인권 감수성 부족이 근본 문제다. 제작진은 <보니하니> 논란 초기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고 해명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청소년인권행동 활동가 미지는 “EBS 제작진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성인지 감수성, 청소년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했다.

EBS 같은 공중파, 유튜브 등 실시간 스트리밍을 포함해 방송 현장 전반의 가이드라인도 부족하다. 진 사무국장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같은 현행법에는 이런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며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건강권과 학습권 보장, 심리상담 같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충만 아동권리옹호 활동가는 “이번 사건은 EBS 같은 유명 방송국의 영상이라 발견했지만,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채널에서도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이 사건은 다양한 영상매체에 출연하는 청소년들이 위험에 노출된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문제가 된 <보니하니> 영상 역시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영됐다.

지난 8월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집> 촬영수칙은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인권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라 할 만하다.

<우리집> 제작진은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이라고 적힌 촬영수칙에 8가지 조항을 담았다. 여기에는 “어린이 배우들을 배우로서 존중하며,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 바라볼 것” “어린이 배우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쓸 수 있는 욕설과 음담패설을 자제하고, 외모나 신체를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는 단어는 신경 쓸 것” “어린이 배우들과 신체 접촉 시 주의할 것”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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