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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오염 책임도 묻지 않고… 정화비용 1100억 한국이 다 떠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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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4곳 반환절차 완료 / 美, SOFA 조항 근거 “낼 수 없다” / 정부 “비용보다 주민 피해 방지” / “방위비 압박 美 겨냥 선제 조치” / 녹색연합 “미군에 면죄부만 줘 / 총선 의식·결정 서두른 것” 비판

세계일보

정부가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의 전경과 출입문, 강원 원주 캠프 롱 기지 내부와 경기 동두천 캠프 호비 내부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정부는 이들 기지를 포함 4개 주한미군기지를 돌려받기로 11일 합의했다. 연합뉴스


11일 정부가 공개한 주한미군기지 4곳에 대한 즉시 반환 합의는 2009∼2011년 시작된 양국 협의의 오랜 결과물이다. 하지만 ‘선(先)반환·후(後)협의’ 기조에 따라 1100여억원의 기지 내 환경 정화 비용을 두 나라 중 어느 측이 부담할지는 명시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환경 정화 비용을 우선 부담하더라도 인근 주민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선반환·후합의로 주민 피해 방지에 방점

정부는 우선 환경 정화 비용을 부담한 후 협의를 거쳐 미국 측에서 비용을 받아낸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간 오염 정화 비용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미국이 ‘방’까지 뺀 마당에 기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환 미군기지 정화 비용은 우리 정부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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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우 국무조정실 주한미군기지 이전지원단장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정부합동브리핑에서 ''정부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국과 제200차 SOFA합동위를 열어, 장기간 반환이 지연되어온 원주, 부평, 동두천 지역 4개 폐쇄 미군기지를 즉시 반환받고, 용산기지 반환 협의 절차도 개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정부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정부합동 브리핑을 갖고 공개한 미군 기지 4곳은 캠프 마켓(인천 부평), 캠프 롱(강원 원주), 캠프 이글(〃 〃) 캠프 호비(경기 동두천) 등이다. 캠프 롱, 캠프 이글, 캠프 호비는 2010년부터, 마켓은 2011년부터 반환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모두 정화 기준 및 책임에 대한 미국 측과의 이견 때문에 그간 반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반환 기지 4곳의 오염 정화 비용은 캠프 마켓 848억원, 캠프 롱 200억원, 캠프 호비 72억원, 캠프 이글 20억원으로 추산된다. 캠프 마켓의 환경정화 비용이 특히 많은 것은 부지 면적이 넓고, 다이옥신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다른 기지에서는 유류 혹은 중금속이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미 측은 ‘미군 주둔 시설 반환 시 원상회복이나 보상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4조 조항을 근거로 비용을 낼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우리 정부는 이 조항에 정화 비용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한·미는 2001년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도 체결했지만, 미국 측은 ‘인간 건강에 대해 널리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에 대해서만 책임진다는 입장이다. 미군이 오랫동안 생활해 온 기지내 이러한 오염은 없다는 주장이다.

양국 간 쟁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미군기지를 돌려받은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 “반환 지연에 따른 오염 확산 가능성과 개발계획 차질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끊임없이 제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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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압박에 ‘선제적 대응’일 수도… “총선 의식한 결정” 비판

정부의 설명과 달리 최근 방위비 인상 압박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을 향한 선제적인 조처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방위비 인상을 통한 ‘동맹 기여론’을 압박하는 미국에 대한 적극적 설명이라는 해석이다. 미군기지를 무상임대하고, 반환 기지의 정화 비용도 한국이 선제적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뿐인 ‘향후 협의’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서도 주둔 기지 내 환경오염 부담금을 낸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국의 부담을 강조하는 미국이 이제 와서 비용을 내겠다고 나설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해 미군기지 반환을 서두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녹색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마치 기지 반환 이후 개선 방향 논의가 이뤄질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지만, 오염덩어리 기지만 돌려받은 셈”이라며 “미군에 면죄부를 주는 반환기지 협상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환이 지연돼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이 심해져 일단 정화작업에 착수한다’는 정부 측 논리에 대해 배제선 녹색연합 생태팀장은 “해당 기지들은 이미 폐쇄된 지 5∼10년 지난 곳”이라며 “총선을 의식해 결정을 서두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형준·윤지로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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