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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전문가의 세계 - 조천호의 빨간 지구](17)물과 열의 스트레스 커지며 식량안보 위협…위기 인식 못해 더 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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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기후의 역습, 짙어지는 식량안보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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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기후위기로 인해

작물수확 10년마다 2%씩 주는데

식량수요는 14%씩 늘어나면서

식량안보 여건 더욱더 취약해져


유엔에서는 2014년 이후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을 기후위기라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기후위기로 물과 열의 스트레스가 커져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식량 수요는 인구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는 기후위기로 작물 수확량이 이번 세기에 10년마다 2%씩 감소하는 반면, 식량 수요는 2050년까지 10년마다 14%씩 늘어나 식량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식량안보에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물 스트레스다. 기온 상승은 물을 더 증발시켜 공기가 더 습해지고 그 결과 폭우 발생이 더 잦아진다. 동시에 토양이 더 빨리 메마를 수 있어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이 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된다. 기후위기는 현재 습한 지역은 더 습하게, 건조한 지역은 더 건조하게 만든다.

전 세계 농작물의 80%는 비에서 물을 공급받는데 전 세계 강우 분포가 변화되고 있다.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먹는 쌀은 물 부족으로 생산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가뭄이 심한 시기에는 천수답에서 쌀 생산량이 17~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있는 2300만㏊의 천수답은 이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반복되는 가뭄은 천수답 쌀 생산 지역의 거의 80%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특히 남서부에서 가뭄이 더 자주 일어나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주요 작물의 약 10%는 재생 불가능한 지하수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지하수를 담고 있는 대수층은 재충전하는 양보다 사용하는 양이 더 많다. 태풍 강도 증가와 해수면 상승은 농지를 바닷물로 침수시킬 수 있다. 홍수는 도로, 농장, 잔디밭에서 하수, 비료 또는 오염물질을 운송하므로 더 많은 병원체와 오염물질이 음식으로 유입될 수 있다.

열 스트레스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 변화는 지역과 작물에 따라 다르다. 지구가열은 북유럽의 감자, 서아프리카의 쌀과 같은 특정 작물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일부 고위도 지역에서는 따뜻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작물을 새로 재배할 수 있다. 하지만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재배해왔던 농작물 생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상적인 재배 조건이 고위도 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해도 그곳 토양이 비옥하지 않으므로 온대 지방처럼 생산적인 농업을 할 수 없다.

지구가열은 작물 성장과 번식을 위한 최적 온도 범위를 벗어나게 한다. 이는 식물의 수분, 개화, 뿌리 발달과 성장을 방해할 수 있어 수확량이 줄어든다. 2011년 미국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에서 발간한 ‘기후안정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곡물 수확량이 현재 수준에서 5~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옥수수 생산량은 2017년 미국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줄이지 않아 지구 평균기온이 4도 상승하면 미국에서 절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인 기온 상승의 2도 이하 제한이 이뤄진다 해도 약 18% 감소할 수 있다. 또 세계 4대 옥수수 수출국(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이 동시에 10% 이상 생산이 줄어들 확률은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약 7%이고 4도 상승하면 86%로 올라간다.

잡초, 해충과 곰팡이가 기온 상승으로 넓게 퍼질 수 있다. 일찍 찾아오는 봄과 온화한 겨울에 더 많은 해충과 잡초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 변화된 기후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식물 질병과 해충은 방어 수단을 발전시킬 시간이 없는 작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더 빈번해지는 폭염으로 가축은 번식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더 취약해진다. 젖소는 열에 민감하므로 우유 생산이 감소할 수 있다. 가축의 기생충과 질병은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더 번성한다. 기생충과 동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화학물질과 동물용 의약품이 사용돼 이것이 먹이사슬에 들어갈 수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은 영양분, 토양 수분과 물 가용성과 같은 다른 조건이 따라준다면 작물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이 식물 성장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는 극심한 날씨, 가뭄 또는 열 스트레스로 상쇄된다.

기온상승에 따라 기아는 증폭되고

폭동, 전쟁, 난민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위기의 악순환 가속화

아시아는 최대 기근과 난민 예고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는 더 많은 물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식물 잎과 토양에서 더 많은 물이 증발한다. 식물은 물이 더 필요하지만 건조해진 토양에서 흡수할 수 있는 물이 적어져 물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식물은 물 손실을 막기 위해 잎 밑면의 기공이 열리는 시간을 줄인다. 이 기공으로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광합성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물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은 물을 찾기 위해 뿌리를 뻗는 데 더 많은 영양분을 사용한다. 이런 이유로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작물 수확량 증가로 이어질 수 없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수록 식물은 탄수화물량을 늘릴 수 있지만, 단백질·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을 희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540~960ppm에 이르면 보리, 밀, 감자와 쌀은 단백질 함량이 6~15%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곡물에 포함된 철, 아연, 칼슘, 마그네슘, 구리, 황, 인, 질소와 같은 주요 원소량이 감소할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 기공이 짧게 열려도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식물 안 물이 기공에서 대기로 덜 빠져나간다. 식물이 물을 더 천천히 잃을수록 토양에서 질소와 미네랄을 덜 흡수한다. 식물에서 질소가 비타민을 생산하는 데 중요하므로 농작물의 비타민 수치도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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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식량 공급은 옥수수·밀·쌀·콩의 거래에 의존한다. 처음 3가지 곡물은 세계 음식 에너지 섭취량의 60%를 차지한다. 콩은 가축 사료로 사용돼 전 세계 단백질 공급량의 65%를 담당한다. 국제 거래를 하는 곡물량은 미국, 브라질과 흑해 지역 등 소수 수출국에 집중되고 이 지역이 점점 더 많은 양을 담당하고 있다.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세계 식량 거래는 127% 증가하였고 그 성장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식량안보 여건은 더욱더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므로 한 지역의 기후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부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물 생산국의 수출제한 조치와 소비국의 수입확대 노력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다시 추가 수출제한과 수입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식량 확보 경쟁이 격화하고 식량자원 민족주의가 일어나 식량 수입국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과 정치·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6년부터 주요 곡물 생산국에 가뭄이 들면 전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 폭동과 정치 불안이 일어났다.

2010년 여름 러시아는 폭염, 가뭄과 이어서 일어나는 산불로 인해 밀 수확량의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세계에서 식량이 불안정한 지역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러시아로부터의 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러시아 정부는 밀 수출을 금지해 자국 식량을 먼저 보호했다. 북아프리카와 아랍 국가에서 빵 가격이 급등했다.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식량 가격 상승이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을 불러일으켜 정권을 바꾸는 시위인 ‘아랍의 봄’이 발생했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음식이 있는 부유한 곳으로 이주하는 난민이 된다. 부유한 나라는 난민을 안보 문제로 다룬다.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영국 브렉시트도 그 원인은 2010년 러시아 가뭄이었다. 이렇듯 전 세계 78억명을 먹여살리는 식량 네트워크는 안전하지 않다.

기후위기 영향을 요약한 지난 9월 ‘네이처’ 기사에 따르면 식량 생산 변화로 고통받게 될 사람은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할 때 3500만명, 2도 상승하면 3억6200만명, 3도 상승하면 18억1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온 상승에 따라 기아는 증폭하는 것이다. 인류는 굶주림과 침략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 역사적으로 침략을 선택해왔다. 영국 상원의원인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부족과 난민 발생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방성은 2003년 발간한 보고서 ‘돌발적인 기후변화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서 기후위기로 식량난, 식수난, 에너지난 등이 겹친 혼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이에 따른 강력한 ‘안보 태세’를 강조했다. 특히 “아시아는 심각한 식량과 물 부족 위기 때문에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2019년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 안보 전략가들이 ‘실존적 기후 관련 안보위기-시나리오 접근’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위기가 폭동, 전쟁, 난민으로 이어지는 안보위기의 악순환을 가속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기근과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한국은 과다인구로 식량 절대 부족

지금 당장 과감한 행동·결단 필요


우리나라는 과다 인구로 식량이 절대 부족하다. 기후위기에 국가 안보적 관점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지금처럼 다른 나라에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어렵게 될 수 있다. 미국과 호주가 전망한 아시아 대기근에서 식량자급률이 25%도 안되는 우리나라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과 호주는 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후위기가 자기 나라에 미칠 영향도 안보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위기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 위기를 국가 안보 수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해 더 큰 위기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변혁을 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붕괴할 것이다. 그 위기를 우리나라는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먼저 맞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결단과 행동이 요구되는 시기에 서 있다. 위험한 ‘사건’이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중으로 미룰 게 아니라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필자 조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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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전 세계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모델과 전 세계 탄소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축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공부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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