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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짬뽕 국물 얼굴에 붓고 폭행"…이춘재 사건 누명 쓴 절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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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씨,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 허위자백 밝혀

경찰관 2명이 8~9일 잠 안재우고, 돌아가며 마구 구타

팔다리 묶어 거꾸로 매달아…젖은 물수건 얼굴 가려

중앙일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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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했지만, 살고 싶어서 허위 자백을 했습니다.”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박모(47)씨는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경찰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당시 방직공장 직원이던 박모(당시 17세)양을 1.5m 깊이로 매설된 콘크리트 하수관에서 밀어 넣은 뒤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씨가 박양의 양말과 속옷 등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타킹으로 양손과 양발을 묶어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화성 사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목 졸려 숨진 것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56)는 최근 박양 살인 사건을 자신이 한 짓이라고 자백했다.

박양이 숨진 날인 91년 1월 26일 오후 8시 50분쯤 주민 김모(당시 32세)씨 역시 옷가지에 손ㆍ발이 꽁꽁 묶인 상태에서 3돈짜리 금반지를 한 남성에게 빼앗겼다. 김씨는 하수관 150m를 기어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김씨의 강도 사건 발생 시점과 박양이 발견된 하수관 위치가 비슷한 것으로 미뤄,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봤다. 박씨의 허위 자백과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재판에 넘겨진 이 사건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박씨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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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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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28년 전 경찰의 강압 수사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강서파출소와 복대파출소를 오가며 8~9일 조사를 받았는데, 경찰 2명이 폭행을 일삼고 잠을 거의 재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사는 경찰서가 아닌 파출소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이뤄졌다. 박씨는 “한평 남짓의 작은 방에 철제 테이블과 의자 2개가 놓여있었다. 형사 2명이 돌아가면서 잠을 재우지 않고 자백을 유도했다. 나는 조사 내내 벽을 보거나 서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박씨를 폭행하고 기마 자세를 취하게 했다고 한다. 박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면 다시 일으켜 세우거나 마구 때렸다”며 “복부와 옆구리를 주로 맞았는데, 폭행 흔적이 남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검찰 조사부터 경찰의 폭행을 주장했으나 “맞은 증거가 없으니 당신의 자백이 맞는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박씨는 먹다 남은 짬뽕 국물을 얼굴에 뒤집어 쓴 가혹 행위도 기억했다. 박씨는 “어느 날 형사 2명이 짬뽕을 시켜먹었고, 나에겐 볶음밥을 시켜줬다”며 “식사를 마친 뒤 갑자기 수갑을 찬 손과 발을 묶고 무릎 사이에 봉을 끼워 거꾸로 매달았다. 젖은 물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먹다 남은 짬뽕 국물을 얼굴에 뿌렸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교를 중퇴한 박씨는 사건 발생 당시 청주의 한 마대자루 생산 공장에 다니다 휴직 중이었다. 박씨는 “박양이 숨진날 청주시 복대동의 만화가게에 들렀다가 당구장에 갔고, 이후 친구 자취방에서 놀다 새벽에 가경동 집에 들어갔다”며 “박양이 숨지기 전날 퇴직한 회사에서 월급 2만원을 받아 어머니께 돈을 모두 드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숨진 박양은 얼굴도 모르고, 피해자 김씨 역시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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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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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가경동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두 달쯤 별도의 상습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경찰에 끌려간 박씨는 ‘네가 한 짓이 맞지’, ‘훔쳐간 금반지를 어디에다 뒀냐’는 추궁을 받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불려 나와 영문도 모른 채 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려 자백을 유도 받았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죽겠다 싶어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했다. 경찰이 짜준 시나리오가 머리에 입력되니 나중엔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자포자기 심정으로 말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가혹 행위를 한 경찰관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다 끝난 일이라 문제를 삼고 싶진 않지만,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했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가경동 여고생 살인 사건은 박씨를 검찰에 송치했다는 서류만 있어 그가 무죄로 석방된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청주=최종권·최모란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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