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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두 번 상처받는 자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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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어쩌다 들켰는데, 어디서 이런 짓을 하냐며 엄청 두들겨 맞았어.”

“난 알고도 아무 말 안 하던데? 그냥 못 본 척 무시하던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다음 날 정신과에 문의하고 진료 예약 잡더라.”

자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처음 부모가 자신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자해는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자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는 증거이고, 부모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데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다시는 그런 몹쓸 짓을 하지 말라며 혼을 내거나, 내 자식이 자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아서 외면한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 의사에게 떠맡겨 버리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의 미숙한 반응과 대처로 아이들은 또 한번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자해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양육자의 대처도 서툴 수밖에 없다. 최근 자해하는 청소년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해가 많다. 우선 자해 청소년들이 모두 정신건강의학과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거라는 오해가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병원부터 데려가려고 한다. 또 이러다 자살로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서두르게 된다.

한데 모든 자해 행위에 자살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자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이와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 보지 않은 채 병원부터 찾는 것은 아이의 반발만 낳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의사의 진료’보다 ‘엄마·아빠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해를 반항적인 일탈 행위나 관심을 끌기 위한 ‘객기’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패줘야 한다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자해 청소년들은 자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해러’의 인증샷이 퍼지는 것을 보면, 자해가 마치 십대들의 허세나 일탈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한데 겉으로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소위 모범생인 아이들도 자해한다. 일부 소수 청소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자해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들을 압도하는 학업 및 생활 스트레스 등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자해하는 아이들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자해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부모들도 ‘내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가슴 아파하면서, 먼저 그냥 말없이 안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부족했던 사랑을 듬뿍 주었으면 좋겠다. 서두르거나 다그치지 말아야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함께 의논해 봤으면 한다. 상처를 낫게 하려면, 아픈 곳을 들춰 헤집는 것이 아니라 감싸고 보듬고 기다려줘야 한다.

한겨레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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