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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시론] 가십이 되는 애도 / 최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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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나욱

<클럽 아레나> 저자



1969년 미국 베벌리힐스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참혹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떠오르는 신예 스타이자 유명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 샤론 테이트와 그의 동료들이 맨슨 패밀리라는 사이비 광신도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으나, 임신 중이던 신예 스타 샤론 테이트의 신변은 이를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로 만들었다. ‘여배우’ ‘유명 영화감독의 아내’ ‘최대 부촌’ 등등의 키워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건을 애도 이상의 이야깃거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가십의 소재로 전락해버린 모양새였다.

50년이 지나 이 사건은 미국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라는 영화를 통해 다시 소개된다. 다만 이 영화는 해당 사건을 기반으로 하되 여러 사실관계를 재구성해 이야기의 방향을 분명히 한다.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 샤론 테이트를 어떤 가십의 주인공이기보다 단지 그의 인간적 매력과 배우로서의 꿈을 보여주는 정도로 달리 소개하며, 사람들이 기대하는 가십을 배반한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을 비틂으로써 영화적 재미와 의미를 창출한다. 애도라는 형식 이면에 숨기고 있는 사람들의 가십, 누군가의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얼마 전 한 인기 연예인의 비보를 접한 우리 사회에도 통용된다. 샤론 테이트와 마찬가지로 이 연예인 역시 ‘여자’ ‘아이돌’ ‘노브라’ ‘스타 남자친구’‘악플’ 등등의 자극적인 키워드로 소개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를 애도하는 뉴스에도 일련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으며, 부고 이후에도 여전히 저질스러운 가십이 곳곳에 즐비하다. 부고 자체에 관심을 갖고 애도하기보다는, 부고를 계기로 또 다른 흥밋거리를 찾으려는 형국이다.

이러한 양상은 일차원적인 가십에 그치지 않는다. 사안의 본질이 아닌 개인의 목적 혹은 흥미에 따라 다른 것을 얘기하는 게 가십이라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방식들 역시 가십으로 보인다. 가령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진다거나 평소 자신이 주장하던 것의 근거로 활용하는 모습이 그렇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고인이 죽은 이유를 축약해 분노의 과녁을 만들어내고 주장의 근거로 삼으니, 어느새 한 연예인의 비극은 논쟁의 씨앗으로 이용되고 있다. 죽음뿐 아니라 애도마저도 소란스러운 가십거리가 되고 만다.

물론 고인을 추모하는 일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슬픔을 강요할 수 없듯 슬퍼하는 방법을 강제하는 것도 고집스러운 일이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애도란 각자가 정의하기 나름이며,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가 발전하도록 반성하는 것도 고인을 기리는 방법이다. 더욱이 그동안 벌어져온 여자 연예인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과 억압, 비난 등은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외의 목적에 치중하다 보면 정작 애도의 본질이 사라지기도 한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덜 잘못했다는 등 경우에 따라서는 진영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인의 비보는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로한 논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애도라는 본연의 목적을 잊은 채 여느 가십처럼 결국 제 할 말만을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고인의 비보 중 오직 명확하게 전해진 것은 생전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울증이 죽음에 관해 일러주는 것은 고인이 단 하나의 잘못이나 고민만으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우울증은 즉각적이거나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고인은 남들과는 다소 다른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며 수많은 우울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이를 수없이 버티고 견디다 어느 날 그런 선택을 했다. 어쩌면 비보를 접한 사람들이 슬픈 까닭 역시, 비보를 넘어 고인이 죽음을 결정하기 전까지 버티고 견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일 테다. 감히 그가 떠안고 있던 고뇌를 어떠한 주장이나 분노로 쉽게 축약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토록 깊이 곪아온 누군가의 고민이 어떠한 주장이나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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