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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문화로 내일 만들기]소소한 이성의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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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심형래씨가 1999년 영화처럼 만들어낸 영화 <용가리>(Yonggary)가 국내 배급은 물론 해외에 수출되었다. 해외에서는 국가에 따라 ‘용가리’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 위해 미리 이름특허까지 사전조율했다는 루머도 있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 현지 배우들을 제작에 참여시켰고,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특수효과에 투자했던 프로젝트다. 영화 엔딩크레디트에는 감독 심형래 스스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경험과 완성해 낸 자신의 성과를 자막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울컥함이 있었다. 물론 함께 영화를 본 당시 어렸던 딸은 아버지가 영화도 아닌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경향신문

일본 내 반한감정과 반한류가 정치 문제와 연결되면서 재생산되고, 단교 수준까지 주장하는 우익집단의 협박에도 BTS의 지난 7월 일본공연은 일본 아미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틀 동안의 오사카공연 10만석이 매진됐다고 한다. 여성인권이 여전히 율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이슬람문화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10월 공연에서는 히잡을 쓴 6만8000명의 사우디 아미들이 열광했다. BTS 역시 노출을 자제한 무대의상을 입고 멤버들 간의 스킨십을 자제했으며 이슬람 율법을 고려해 사소한 동작과 발음에도 조심했다고 전해진다. <알라딘>의 지니처럼 콘텐츠에는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주문이 있나보다.

‘텀블벅’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일반 대중이 소액투자를 통해 좋아하는 콘텐츠의 완성을 만들어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라는 상품에 10월17일 기준, 23억원이 모였다. 시작할 때 목표액은 이미 초과됐는데 마감일이 6일이나 남아있다. 6만 명이 넘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 투자금액이 기록적인 규모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마감일에 지급되는 리워드, 즉 투자성과는 투자금액에 대비해 어떻게 구성될까. 막대한 투자금액에 공감해 확대된 9월30일자 리워드 수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슬리브형 3단 디지팩, USB카드형 음반 및 CD형 음반, 20페이지 북클릿, 키링 추가 증정, 사인엽서 3장 등 총 5종의 상품을 3만3000원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5만9000원 투자자에게는 이러한 상품세트를 2세트 지급한단다.

<달빛천사>는 오래된 일본애니메이션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애니메이션에 더빙했던 일본인 성우가 중심인데, 강력한 팬덤을 구성하고 있는 그 성우의 목소리로 한국판 OST를 제작해 판매한다는 기획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아주 소박하고 오타쿠적인 팬덤의 목표여서 시작할 때의 목표금액도 3300만원이었을 것이다. 11월25일이 예상지급일인데, 소액투자한 팬들의 마음엔 모아진 금액도 기적일 터이지만, 지급될 상품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행복의 시간이란다. 크라우드펀딩을 기획·제안한 창작자는 국내 성우협회 소속 보이스 플랫폼이다. 일본상품의 불매운동 과정에서도 이 상품기획은 스스로도 놀라는 투자금액을 만들었다.

우연히 찾은 강남 커피숍에서 한 연예인의 생일잔치를 조촐하게 준비하며 열심히 기념품을 진열하고 풍선을 꾸미고 있던 청년을 본 적이 있다. 휴가 중인 군인이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스타 생일을 위해 모든 일정을 생일잔치에 맞추고 있다고 했다. 느끼며 좋아하는 감성이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성을 만들고, 정주행으로만 직진한다. 이처럼 뜨거우면서도 절대로 눈치보거나 타협하지 않는 소소한 이성을 콘텐츠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설리가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소소한 이성이 건실한 응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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