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내려왔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추석 명절이었다. 사고는 마을버스 기사의 100% 과실로 나왔고 마을버스공제회에서 입원치료비는 나올 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난한 합의 과정이 남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오자 마을버스 기사가 매일같이 찾아와 우선 형사합의만이라도 해달라고 간청했다. 피해자 측에서 형사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써줘야만 다시 마을버스를 몰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가족도 마을버스 기사를 굳이 경찰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모두 시간에 쫓겨 먹고살자니 벌어진 일이어서 크게 원망할 수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발품을 덜어주는 마을버스는 배차시간이 짧아 매번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일반 시내버스보다 더 무리한 운전을 하게 된다. 사고를 낸 마을버스 기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헬멧을 썼으면 덜 다쳤을 텐데 하며 말을 흐렸다. 청년도 내내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더웠던 날씨를 탓하자니 헬멧을 쓰지 않은 후과가 너무 컸다.
여기저기 물어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신청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전했다. 또 배달노동자조합인 ‘라이더유니온’에 상담해보자고도 했다. 너무 젊고 눈동자의 위치가 바뀔 만큼 크게 다쳐 장애나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에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길게 봐야 한다는 주변의 우려도 전했다. 하지만 업주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악덕업주여서가 아니라 워낙 며칠 일하다 그만두는 배달노동의 특성상 매번 가입을 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규모가 있는 기업이 아니고서야 영세 업장은 업주가 세무와 보험 관련 서류업무도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급한 건 떡볶이를 파는 일이다 보니 차분히 앉아 컴퓨터를 보면서 해야 하는 일들은 늘 후순위로 밀렸다. 청년에게 산재 신청 용의가 있으면 그동안 내지 않은 산재보험 납입금을 내고 신청을 돕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산재 신청을 포기한 이는 청년이었다. 빤한 형편에 일시금으로 들어오는 합의금이 필요해서였다. 나는 더는 산재 신청을 강권하지 못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 합의금이 내내 아쉬울지도 모를 테니, 이래저래 이 일에 손을 뗄 핑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남의 일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떡볶이집 사장님과 마을버스 기사, 그리고 스무 살의 배달노동자. 가장 낮은 노동의 세계가 뜨거운 여름날 세게 한 번 맞부딪친 이야기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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