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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변화 없는 北상황 안타까워… 北 연구, 국제화해야”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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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경력 외교관 출신’ 안호영 북한대학원대 총장 / 中·베트남 상전벽해 수준 변화 / 北, 美 셈법 읽고 속히 협상을 / 북한학 석·박사만 650명 배출 / 北 문제 해결에 고무적인 일 / 외교관은 ‘머릿속 캐비닛’ 필요 / 3∼4분은 얘기할 지식 갖춰야

세계일보

안호영 북한대학원대 총장이 지난 10일 “국제 정세를 세밀히 관찰하며 북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안호영(63)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외교 1차관과 주미대사 등을 지낸 40년 경력의 전직 외교관이다. 주미대사를 끝으로 외교부를 떠난 안 총장은 지난해 북한대학원대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연구기관에서 국제적 시각을 지닌 안 총장은 어떤 시각으로 북핵과 한반도 사안을 바라볼까.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안 총장의 눈엔 특별한 해법이 보였을 수 있다.

총장 취임 1주년을 즈음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에서 안 총장을 만났다. 안 총장은 지난 1년의 소회를 묻는 말에 “이제 북한 연구도 국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며 “지난 30년간 국내에 축적된 북한 연구를 국제적으로 공유하면 북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총장직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는 북한대학원대는 경남대 북한학과에서 출발해 전문대학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그동안 이곳에서 배출한 북한학 석·박사만 650명(박사 136명)이 넘는다. 안 총장은 “대학의 큰 사명 중 하나가 교육인데 석·박사 외에 지도자 과정까지 포함하면 3500여명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했다”며 “북한에 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북한 문제 해결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 총장은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표부 참사관, G20(주요 20개국) 대사, 외교부 1차관, 주미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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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총장은 후배 외교관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놨다. 그는 “외교관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 갑자기 이야기하라고 해도 3∼4분 정도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마음속에 캐비닛을 하나 만들고 거기에 파일을 넣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마음속 캐비닛 파일의 내용물)을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러한 노력엔 사람을 만나고, 신문을 보고, 강의를 듣는 게 포함된다”고 했다.

안 총장은 자신의 마음 속 캐비닛을 활용한 사례를 들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1999년 제네바 대표부 근무 당시 금융위기 이후 패널 회의가 열렸다. 그때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한 전문가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을 관리들의 부패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명패를 세워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마침 직전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폴 크루그먼 교수의 글이 생각났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은 ‘팡글로스 신드롬’이라고 분석한 내용인데,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캉디드’ 란 소설에 나오는 인물인 팡글로스의 낙천주의 성격을 빗댄 해석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관료와 경제인, 사회 구성원들이 이 낙천주의에 빠져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였다. 회의장에서 한국 외교관으로서 그 지적을 뼈 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크루그먼 교수의 말을 인용해 팡글로스 신드롬이라고 생각한다는 논지의 설명을 쭉 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더는 팡글로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발언을 마쳤다. 그러자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낸 안 총장은 “마음속 캐비닛이 제대로 작동한 사례였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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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안 총장은 최근 결렬된 북·미 실무협상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안 총장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의 셈법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미국의 셈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라며 “미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알아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국가들의 변화 속에서도 제자리걸음 수준인 북한의 상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안 총장은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북핵 문제가 현실적으로 대두한 게 1991년이라고 보면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며 “그 사이 중국과 베트남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는데, 앞으로 30년을 생각해 본다면 북한에 정해진 답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큰 흐름을 알고 협상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한·미동맹 약화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안 총장은 “1990년대 주미대사관에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시는 시대적 의미를 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냉전 이후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정해진 중요한 시기였다”며 “시간이 지나면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 것을 알게 될 텐데 국제 정세 관찰과 더불어 의미 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교정책 좌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정하면 대미 관계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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