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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트럼프는 해체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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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언론인 출신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연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자신의 장서 바자회를 열었다. 평생 읽고 모은 책을 후배들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그때 챙긴 책 중에 미국의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피아노 앞의 시인>(The Poet at Piano, 1988)이 있다. 작가들과 영화감독, 배우 등을 인터뷰한 그의 첫 책이다. 비록 30여년 전의 기록이지만 보르헤스, 쿤데라, 오드리 헵번 등의 육성을 접하는 반가움이 있다.

가쿠타니는 197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시작해 <워싱턴 포스트>와 주간지 <타임>을 거쳐 1979년에 <뉴욕 타임스>로 옮겨 왔다. 1983년부터는 서평을 담당했으며 2017년 퇴직할 때까지 “영어권 최고의 비평가”(<배니티 페어>)로 군림해 왔다. 1998년에는 수준 높은 서평을 쓴 공로로 퓰리처상 언론 분야의 비평 부문 상을 수상했다.

서평가는 물론 문학평론가로서도 정상의 위치에 있던 가쿠타니가 2017년 7월 퇴직했을 때, 문학과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회자되었다. 가쿠타니 자신은 신문사를 그만둔 뒤의 계획과 관련해, 그간 써 왔던 문학평론이나 서평이 아닌 정치 비평 성격의 긴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가 프리랜서 작가가 되고서 1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가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의 원제는 ‘The Death of Truth’, ‘진실의 죽음’이다. ‘트럼프 시대의 허위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에서 가쿠타니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과 가짜 뉴스, 음모론, 편협한 선동의 실태를 고발하고 그 사회·문화적 맥락을 살핀다.

<워싱턴 포스트>는 취임 첫해에 트럼프가 하루 평균 5.9개의 거짓말을 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가쿠타니가 보기에 “트럼프의 인터뷰, 대본 없는 연설, 트위터 메시지는 모욕, 감탄사, 자랑, 여담, 불합리한 추론, 수정, 경고, 빈정거림이 놀랍도록 뒤범벅되어 있다.” 가쿠타니의 이 정치 비평서에서 트럼프는 주인공에 해당하는데, 만약 그런 인물을 주인공 삼은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소설가가 트럼프 같은 악당을, 다시 말해 (…) 허풍이 심하고 정도가 지나친 자아도취증, 허위, 무지, 편견, 천박함, 선동, 폭군 충동의 화신을 지어냈다면, 너무 억지로 끼워맞춰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시대’라는 말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라는 뜻만은 아니다. ‘트럼프적인 것’이 지배하는 시대, 그것이 주류이자 일종의 상식이 되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 시대라는 뜻을 그 말은 담고 있다. 책의 원제인 ‘진실의 죽음’은 그 시대의 핵심을 요약한 표현이다. 진실을 살해하고 그 자리에 거짓을 대신 세우는 유력한 방법으로 가쿠타니가 주목하는 것이 상대주의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요약할 법한 이 태도는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학교에서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안적 사실”이 객관적 사실과 병존할 수 있다고 믿는(척한)다.

가쿠타니가 상대주의의 연원으로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드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이 두 사조는 서구·부르주아·남성으로 대표되는 주류적 가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것인데,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서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애정’하는 논리가 되었다. 전복을 표방한 이론이 기득권 체제 수호의 도구로 쓰이는 아이러니다. 해체주의는 물론 아이러니와 반어에 호의적인 이론이지만, 그 창시자인 자크 데리다가 기대했던 것이 이런 아이러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체주의 자체가 그런 오용 또는 악용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 가쿠타니의 확신이다. 가쿠타니의 이런 주장에 대해 데리다라면 어떻게 반박했을지 궁금하다.

“결국 해체주의는 철저한 허무주의다. 그것은 증거를 신중히 수집하고 판단해 가능한 최선의 진실을 확인하려는 저널리스트와 역사가의 노력이 헛수고라고 말한다. 이성이 낡은 가치라고,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자체를 전복하려는 불안정하고 기만적인 인터페이스라고 말한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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