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5073444 0352019091955073444 08 0801001 6.0.14-RELEASE 35 한겨레 0

132번 사용하는 테이크아웃 컵

글자크기
[세상을 바꾸는 생각]

“일회용 컵을 재사용 컵으로 대체하자”

영국 건축가 출신 디자이너의 과감한 도전

런던서 첫 서비스...두달간 종이컵 10만개 구제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나 음료를 테이크아웃할 때 쓰는 종이컵은 100% 순수한 종이가 아니다.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다. 컵 속의 음료가 종이에 스며드는 것을 막고 음료의 온도를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유지해주기 위해서다. 따라서 종이컵은 일반 종이처럼 펄프로 분해되지 않아 재활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이런 종이컵이 연간 전 세계에서 6천억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이컵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하고 있다. 영국의 건축가 출신 디자이너 사피아 쿠레시(Safia Qureshi)도 일회용 컵 문제를 해소하는 데 발벗고 나선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100번 이상 다시 쓸 수 있는 컵과 이를 회수하는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것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런던에서 정식으로 출범한 컵클럽(CupClub)이라는 이름의 컵 재사용 프로그램은 이렇게 운영된다. 우선 이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컵은 기존의 종이컵이 아니다. 기존의 컵은 플라스틱 코팅 종이와 플라스틱 뚜껑으로 구성돼 있다. 컵클럽의 컵은 용기와 뚜껑 모두를 재활용 가능한 저밀도 폴리프로필렌으로 했다. 표면은 매끄럽게 처리했고 색깔은 흰색으로 했다. 또 컵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RFID 칩을 내장했다. 이들은 런던의 각 커피숍에 수거함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모아진 컵은 매일 수거해 세척한 뒤 커피숍에 다시 공급해준다. 각 컵은 평균 132번 사용한 뒤 모두 재활용 시설로 보내진다.

이 컵을 사용하려면 먼저 컵클럽 서비스에 가입하고 전용 앱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컵을 취급하는 커피숍에서 컵클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컵을 반환하지 않으면 3달러가 청구된다. RFID 칩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쿠레시는 서비스를 시행해보니 설령 컵을 돌아오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지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성과가 있었을까? 쿠레시에 따르면 두 달여 동안 10만개가 넘는 컵이 매립지로 가는 운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컵클럽은 처음 1년 동안 600만개 음료 주문을 이 컵으로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출근길에 목격한 종이컵 보고 영감 떠올라

쿠레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느날 아침 출근길에 목격한 장면이었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가던 그의 눈에 세 젊은 친구가 나란히 일회용 컵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들은 목적지 역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린 뒤 곧바로 역에 있는 쓰레기통에 컵을 버리곤 총총히 사라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저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수거센터로 모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애초 부유층의 고급 아파트, 체육시설 등을 설계하는 건축가였던 그는 당시 동료 건축가(Maxwell Mutanda)와 함께 건축가의 길을 접고 런던에 `스튜디오 디테일(Studio [D] Tale)'이란 이름의 스타트업을 세운 직후였다. 사회경제적 부유층만이 아닌 대다수 사람들을 위한 걸 디자인하고 싶다는 것이 새로운 길에 뛰어든 이유였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걸 찾고, 만들고, 개발하고 싶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두 사람은 커피숍과 커피 이용자들 모두가 쉽게 채택할 수 있는 컵 순환 시스템 `컵클럽'(CupClub)을 개발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플라스틱 문제는 그리 큰 관심 사안이 아니었지만 그는 곧 커다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오랜 기간 도시 시설물을 설계해온 건축가 경험을 통해 5~10년 후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익숙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식품용기 등 다른 일회용 제품에도 확산 기대

물론 친환경적인 컵 사용 방안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이 아니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지만 다양한 컵 공유 프로그램도 있었다. 환경 보호에 좀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개인용 컵을 갖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다. 관건은 쉽게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뚜껑과 용기를 한가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발전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컵클럽 사업이다. 쿠레시는 다른 제품에도 이 사업 모델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분 안에 다 써버리는 일회용 제품이라면 이런 류의 대체품을 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유력한 후보는 일회용 식품 용기다.

그러나 컵클럽이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재사용 컵'이라는 새로운 습관을 쉽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한 번 쓴 컵을 갖고 있다가 정해진 곳의 수거함에 넣는 일은 여전히 번거로운 수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