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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평창올림픽 성화 디자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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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이노디자인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영세 회장. [사진 제공 = 이노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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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세가 다시 돌아왔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의 휴대폰 '가로본능',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 '프리즘',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디자인 등 그를 수식하는 대표 작품들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가 세상을 바꿀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오는 24일 한국무역협회와 '김영세 스타트업 디자인 오디션'이라는 행사를 열어 참가 스타트업과 만남을 진행한다. 25일에는 서울산업진흥원(SBA)과 함께 중소기업 제품을 선발해 '큐레이션 바이 김영세'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10월에는 '빅디자인: 디자인으로 창업하라'(가제)는 제목의 책도 출간한다. 갑자기 왜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것일까. 직접 들어본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우리는 천년 만에 한 번 오는 변화의 순간(디지털 혁명)을 지나고 있어요. 이에 따라 디자인 역시 과거 산업시대에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How to design)'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What to deisgn)'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수없이 많은 점을 연결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찾는 것', 이게 제가 생각하는 '빅디자인'입니다. 무수히 많은 제품이 스타트업에서 탄생할 것이고, 저는 그들을 응원할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같은 비전펀드도 만들고 싶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도시 '팰로앨토'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조찬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모두 디자인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디지털이라는 요소를 놓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방식을 구성해서 창조해냈다. 이들의 목표는 '디지털이 바꿔가는 인류의 생활방식을 새로 그려 나가는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이 세상에 없던 방식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디자인 기업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디자인을 고객에게 선사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나는 늘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듯 디자인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이들 기업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공간과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디자인의 근본 원리인데, 기업가정신 역시 이와 닿아 있다.

오늘날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기술과 제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 나는 이들 기술이 인간 중심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디자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빅디자인'이라는 용어를 그래서 생각한 것 같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다. 기계, 전기, 인터넷 등 세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인류는 디지털이 만들어가는 큰 변화의 첫 페이지에 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산업혁명 시대의 디자인과는 다른 관점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산업시대에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수없이 많은 점을 연결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찾는 것', 이게 내가 정의한 빅디자인이다.

디지털의 큰 변화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20년 전의 애플 아마존 구글과 같은 새로운 성장기업은 이미 태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이다. 디자인 없이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빅디자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영향력은 100년 전 세상을 바꾸었던 '바우하우스 무브먼트'보다 규모가 클 것이다.

― 기업가들 마음가짐도 달라야 할까.

▷이제 경영자들은 주가에 집중하는 것보다 고객을 위한 일, 직원을 위한 역량 개발, 세계와 사회의 혁신을 위해 힘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을 만들어주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디자인의 미션이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고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디자인의 수요가 더욱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차원에서 언젠가 나는 손정의 회장이 만들고 있는 비전펀드 같은 대형 펀드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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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활동이 있나.

▷어젯밤에도 어떤 스타트업과 통화를 했다. 내가 제품 디자인을 해서 도와주는 곳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회사의 광고 전략까지 줄줄이 조언하게 됐다. 나는 멘토링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멘토라고 생각해야 멘토인 것이지. 대신 내가 꽂혀 열중하면 진심 어린 조언이 나온다. 꽂히지도 않은 프로젝트인데, 모임에 나오라고 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한다면 그건 엉터리 조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창업자를 사랑하는가, 그들과 같이 열정을 섞었는가, 함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그게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과의 관계다. 그래서 나는 멘토링보다는 프렌토링(Friend― toring)을 하겠다고 한다. 회사를 보면 안다. 내가 디자인하고 싶은 곳이 있고, 천금을 준다 해도 하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

내 디자인으로 글로벌하게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본다.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기업이 100배 이상 성장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이런 회사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30년 이상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쌓은 인맥도 연결해주고 싶다.

― 한국 스타트업도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다. 40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시카고로 가기 전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 잠시 내리면서 생전 처음 보는 미국 땅 스케일에 마음속에서 큰 동기 부여가 생겼다. '디자인으로 성공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마음속 다짐이었다. 공부나 취직이 아니라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6년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창업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도 그 꿈은 이어지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실리콘밸리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창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 스타트업도 글로벌로 보내고 싶다.

그 중간에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삽입해 더 큰 존재로 키우고 싶다. 더 이상 베껴서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 디자인의 어원은 변화를 만드는 것(Make Changes)이다. 창조해야만 시장을 가져갈 수 있는데, 이를 위한 디자인은 내가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건가.

▷오는 24일 '김영세 스타트업 디자인 오디션'이라는 행사를 무역협회와 함께 열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할 생각이다. 25일에는 SBA와 함께 디자인이 뛰어난 중소기업 제품을 선발해 '큐레이션 바이 김영세'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10월에는 내 생애 다섯 번째 책 '빅디자인: 디자인으로 창업하라'를 출간한다. 책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주목해서 보는 스타트업 트렌드는.

▷친환경, 건강, 생활, 디지털, 사물인터넷(IoT)등이다. 특히 IoT는 시스코 전략보고서를 보면 5년 뒤 1조9000억달러(약 2300조원) 규모로 성장한다. 한국 경제 규모가 2100조원 정도인데 그런 시장을 IoT 혼자 만드는 것이다. 속으로 나는 '디자인 대박'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이블, 의자, 자동차, 조명, 보안 등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그런 큰 틀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스타트업이 나올 것이다. 조금씩 보조금을 줘서 이들을 키우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진짜 성공하게 하려면 하고 싶은 이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은…

△1950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응용미술학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 산업디자인 석사 △1986년 이노디자인 USA 설립, 1999년 이노디자인 코리아 설립 △2010년 상명대 디자인대학 석좌교수 △1998·1999년 한국산업디자인대상, 2012년 옥관문화훈장 △2005년 아이리버·라네즈 슬라이딩팩트 등 디자인으로 레드닷 어워드 수상 △삼성전자 휴대폰 '가로본능' 디자인 등 다수 △2018년 샤블리에 설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성화대 디자인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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