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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나도 화학적 거세 해달라" 성범죄자 아닌 일반인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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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 병원 문의·상담 늘어

“정신과 진단 받으면 처방 가능”

성범죄자 2명은 자진 연장 요청

법에 규정 없어 허가 못해줘

연간 500만원 비용 예산도 부담

중앙일보

포털사이트에 '화학적 거세'라고 치면 일반인도 ’치료를 받고 싶다“고 문의하는 글을 볼 수 있다. 오른쪽은 몰래카메라 단속 사진.[사진 네이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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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는 성범죄자 2명이 최근 치료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2011년 도입 이래 첫 자진 연장 신청 사례다. 다만 연장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치료비도 연간 500만원 소요돼 이들의 치료는 올해 10월 종료될 예정이다.

성충동 약물치료는 도입 당시 효과가 실제 있을지, 국가 공권력이 개인의 신체 내부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 논란이 분분했다. 이번 연장 신청 사례로 효과는 입증됐으니 더욱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50대 남성과 준강제추행죄를 범한 30대 남성이 최근 성충동 약물치료 연장을 신청했다. 두 사람은 모두 성추행 전과로 2번 이상 구속됐다. 이들은 충남 공주에 위치한 국립법무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출소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까지만 정부로부터 성충동 조절 약물치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명령을 선고하는 성충동 약물치료는 최장 15년까지 가능하지만, 국립법무병원 내 치료감호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른 치료 기간은 최장 3년까지다. 두 사람은 모두 치료감호 심의위원회 결정으로 3년간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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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 어떻게 하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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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반인도 화학적 거세를 문의하고 자진해서 받겠다고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화학적 거세’라고 검색하면 “3~4개월간 성욕이 사라진다는데 체험해 보고 싶다” “제 성욕이 조금 지나친 것 같다”과 같은 치료 방법을 문의하는 글을 확인할 수 있다. 배범철 비뇨의학과 전문의는 “성충동이 강한 미성년자가 부모와 함께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찾는다”며 “성범죄자에 주입하는 주사는 못 놔주지만 항남성호르몬제와 충동을 줄이는 진정제를 섞어 처방한다”고 말했다.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에 성범죄자에 놓는 같은 주사를 처방해달라고 병원을 찾는 일반인도 있다고 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충동 장애는 정신과 진단을 통해 처방이 가능하다”며 “비보험이라 환자 동의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성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률은 2007년 혜진‧예슬이 사건, 2008년 조두순 사건이 발생하면서 탄력을 받아 발의됐다가 과잉 입법 논란에 국회 통과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김길태‧김수철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통과됐다. 당시 재적의원 180명 중 137명이 찬성했다.

2008년 9월 관련 법을 처음 발의한 박민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돈을 많이 들여 용역도 하고 어렵게 통과시킨 법이지만 연간 이행 건수가 5건에 못 미친다”며 “검찰과 법원에서보다 적극적인 청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박 전 의원은 형사부 시절 경험이 법안 발의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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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동 약물 치료 명령 부과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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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에 따르면 법원 판결에 따른 성충동 약물 치료는 법안 시행 직후 2011년과 2012년에는 한 건도 없다가 2013~2015년 3년 연속 연간 6건 시행됐다. 그러다가 2017년 0건, 2018년 1건, 2019년 2건으로 최근에 주춤한 상태다.

치료는 검사의 청구로 법원이 치료 명령을 결정하거나 정신질환 범죄자 치료시설인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 내 치료감호 심의위원회가 내린 결정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치료감호 심의위원회 결정이 지난해 7건, 올해 13건 이상으로 늘고 있다.

국립법무병원에서는 재소자를 1호(정신질환자)와 2호(약물 중독자), 3호(성도착증 환자)로 분류해 관리한다. 소아기호증이 있거나 재범률이 높은 성도착증 환자에 약물‧상담 치료를 하는데, 출소 이후에도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치료감호 심의위원회가 화학적 거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1회 50만원인 주사 비용으로 범죄 막을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라며 “정신질환자는 최장 20년까지 치료가 가능하지만 성범죄자에 화학적 거세 치료가 가능한 보호관찰 처분이 내려지면 최대 3년 밖에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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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줄지 않는 성범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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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화학적 거세 도입에도 전체 성범죄 사건 수는 줄지 않는다며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강간‧강제추행 등 발생 건수는 2015년 2만1286건과 2016년 2만2200건, 2017년 2만4110건으로 늘고 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간음‧강제추행 등 사건은 2015년 983건과 2016년 912건, 2017년 981건으로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위원은 “성범죄의 원인은 호르몬뿐 아니라 원한이나 복수, 지배 욕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화학적 거세는 일시적인 대중적 효과가 있을 뿐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무분별하게 확대하면 ‘국가에서 경비를 내서 나를 치료해 달라’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상·백희연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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