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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삶의 향기] 위기의 시대, 부처님 탄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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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비 내린 후의 오월은 더 푸르고 싱그럽다. 파스텔 톤 산색이 어느 순간 짙어졌다. 푸른 산에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아주 작은 풀꽃에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 담겨있다. 생동감으로 충만한 시공간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새뜻하다.

절집의 오월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들로 분주하다. 지금 어느 곳에 부처님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절집마다의 행사준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종교의 핵심과는 별개로 봉축 열기는 시대와 장소에 맞는 문화로 정착되었다는 말이다.



환경 파괴되고 진실·신뢰 붕괴

인간다움 상실 위험수위 이르러

상호연관성 회복, 이웃 존중해야

중앙일보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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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용인의 호암미술관을 연거푸 세 번이나 찾았다. 5년 동안 준비했다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주최 측 설명에 따르면 전시의 속 주제에 ‘불교와 여성성’을 담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 불상과 불화와 사경들의 발원자이자 후원자인 수많은 여성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전시였다. 부드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자비를 전시에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자비란, 다른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자비라는 방편을 통해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원력을 품는다.

한글이 창제된 후 첫 국문 활자본으로 ‘석보상절’이 간행되었다. 1446년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와 설법을 모아서 24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석보상절’이다. 그 상세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조선초기 ‘불전도(佛傳圖)’ 두 점이 전시되어 특히 흥미로웠다. 그 가운데 석가탄생도는 일본 후쿠오카의 혼가쿠지 소장인데 이번 전시를 위해 빌려왔다.

“석가모니 탄생전의 징후로 땅속에서 보물이 저절로 나오고, 설산의 사자가 성문 앞을 지키고, 하얀 코끼리는 정원으로 들어와 노닐었다. 4월 8일 해가 뜸과 동시에 마야부인은 보석으로 장식한 가마를 타고 정원 구경에 나섰다. 천부가 꽃을 뿌리자 구부러져 내려온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기 위해 오른팔을 뻗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보살이 탄생했다. 보살은 스스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사자후를 질렀다.”

그림에는 석가모니의 탄생 장소가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과 같고 마야부인은 왕후의 모습과 흡사했다. 아버지 정반왕은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었다. 조선왕의 모습이나 중국 황제의 복식인 십이장복을 입고 있어서 조선왕의 권위를 강하게 반영한 부분도 있다. 왕의 권위를 성스럽게 하거나 그 시대마다 성인이나 선지식들을 존중하는 것은 지혜와 자비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여러 탄생의 상황이 장면마다 묘사되어 있고, 성인의 출현으로 자기나라와 이웃나라까지 좋은 일이 덩달아 일어나고 있는 그림들도 재미있다. 화면 상단 오른쪽에는 멀리 중국에서는 주나라 소왕(기원전 10세기)때 석가가 탄생하자 우물물이 넘쳐나고 산과 궁전이 진동하며 오색 빛이 태미궁을 관통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듯 성인이 출현한 것을 아름답게 글로서 묘사하고,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렸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같은 때에 제작한 또 한 점의 그림은 석가출가도(유성출가상)인데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에서 대여해 왔다. 독특하게도 석가모니의 출가보다는 출가 후의 장면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팔백리를 이동하여 설산의 고행림으로 들어가는 장면, 궁중에서 태자의 부재를 알고 슬퍼하는 태자비 구이, 마부가 가지고 돌아온 보관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부왕,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태자비의 모습들이다. 출가의 성스러움과 세속을 대비시켜서 내용을 극대화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을 21세기를 분석하는 학자들은 위기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정보 과잉과 왜곡으로 진실과 신뢰가 붕괴되고, 환경 훼손과 자원의 고갈이 심각한 상황이며, 기후변화로 생태계는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 인간소외와 고립이 증가하고 있으며, 신체 확장과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인간다움의 상실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위기가 커질수록 연기적 세계관으로 상호연관성을 회복하고, 이웃과 자신을 존중하는 자비로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도 간절히 요구된다. 부처님 오신날을 즈음해 열리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를 감상하며, 억불정책이 극성이던 암울한 상황에서도 성인의 출현을 아름다운 글로 묘사하고,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렸던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위기의 시대, 이 시대 부처님의 탄생은 더 부드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자비 가득한 그림으로 그려지면 좋겠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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