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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기자의 IN서울] 절망으로 내몰린 노숙인, ‘폭염’보다 두려운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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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 서울시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인구 1000만을 위한 수많은 주택·경제·교통·환경·복지·안전·문화·행정 정책들이 숨쉬고 있습니다. 뉴스핌이 [IN서울]로 그 정책들을 향해 한발 더 다가섭니다. 생생한 현장과 심도있는 진단으로 서울시 정책의 민낯을 전달합니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오후 3시 45분. 서울역 노숙인 거리상담, 이른바 ‘아웃리치’를 시작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온도는 32도. 하지만 도로와 인도에서 솟구쳐오른 열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40도를 넘는 기분이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달궈진 광장 한가운데 지쳐 쓰러진 노숙인 몇몇이 모여 있었습니다.

센터 안쪽에서 쉴 것을 권했지만, 돌아오는 건 힘없는 거부. 박상병 희망지원센터 현장지원팀장은 “본인들이 도움을 거부하면 우리들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주변 시민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이들을 피해갔습니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14일 서울역의 모습입니다.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이제 여름철 더위는 단순한 온도가 아닌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폭염’은 ‘재난’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8.5일이었던 폭염일수는 2018년 31.5일로 증가했고 열대야일수 역시 같은기간 15.9일에서 17.7일로 늘었습니다.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지난해 일사병, 탈진 등 온열질환자만 4368명. 그중 45명은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폭염은 쪽방촌이나 노숙인 등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생존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통은 집계에 반영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핌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서울로 7017’에서 내려다본 서울역 광장의 모습. 그늘이 드리워진 광장 끝쪽에 노숙인들이 모여있다. 서울역 희망지원센터는 200~250여명에 달하는 거리노숙인들에게 응급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 08. 14. peterbreak2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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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울시는 올해 처음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2억5000만원 규모의 폭염예산을 편성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노숙인 특성상 제대로 된 지원이 쉽지않기 때문입니다. 주거지원의 경우 예산과 형평성이라는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노숙인들의 처한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서울시 노숙인 지원 대책의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역 ‘희망지원센터’를 찾았습니다.

◆숨막히는 폭염, 노숙인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수와 관심

서울역 광장 한켠에 자리잡은 희망지원센터는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2011년 12월 개소한 노숙인 현장지원전문시설입니다. 서울시 사업위탁을 받아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며 15여 명의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거리상담(아웃리치), 응급구호, 일시보호시설 연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7~9월 여름철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서울역사와 광장, 서부역 부근, 서울역 지하도, 서소문공원, 회현역과 용산역, 잠실지역 등을 순찰하며 노숙인들에게 생수를 지원하고 위급상황도 점검합니다.

10년 넘게 서울역을 지키고 있는 박상병 희망지원센터 현장지원팀장은 “서울역과 영등포역에 주로 모이는 거리선생님(거리노숙인)은 가장 열악하고 생존과 직결된 상황에 놓여있다. 여름철에는 생수를 지원하고 더운 곳에 쓰러져 있는 분들을 그늘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필요한 경우 응급의료지원을 하고 심각하면 병원으로 옮기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팀장과 함께 서울역 아웃리치를 동행한 날도 폭염은 여전했습니다. 날씨가 조금 흐려 햇빛을 가렸지만 오후 3시 기온은 32도를 육박했습니다. 인도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5분도 지나지않아 땀이 등을 적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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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거리노숙인 현장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박상병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산하 희망지원센터 현장팀장. 2019. 08. 14. peterbreak2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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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이었지만, 서울역과 인근지역에서 거리노숙인은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여섯명은 거리 구석에 힘없이 누워 더위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생수 한 병이 없다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박 팀장은 “서울역 지역에만 200~250명 정도의 거리선생님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거리 생활이 만성화된 분들이 많아 적극적인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삶에 대한 의욕과 동기부여가 없어 쉽게 알콜중독 등에 빠진다. 본인들이 거부하면 어떤 도움도 주기 어렵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대책 마련 나섰지만...주거지원 등 지원확대 '절실'

오후 3시부터 시작한 한시간 여의 아웃리치 동안 200통의 생수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용산지역까지 거리지원을 나갈 경우 한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웃리치에는 센터 소속 복지사 뿐 아니라 한때 노숙인이었지만 지금은 사회 복귀 절차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체감온도가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상황에서 생수 한 병은 거리노숙인들에게는 ‘생명수’와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들의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보다 근복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거지원을 통한 자립환경 구축과 지역사회와의 연계 프로그램 마련 등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시 역시 이런 정책 필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올해 216호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매년 200호씩, 총 816호의 지원주택을 노숙인과 장애인 등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을 수립, 실행중입니다. 다만 예산문제와 저소득층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립을 뒷받침할 ‘일자리’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교육수준이 낮고 건강도 좋지 않은 노숙인들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입니다. 게으르고 무능하며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지원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술먹고 싸움만하는 노숙인들 지원할 돈 있으면 OO이나 해달라’는 문장. 저 빈칸을 채우는 단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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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내부정경. 이곳에서는 정신건강상담, 현장지원, 위기대응콜 및 각종 응급대응과 지역연계프로그램 등 노숙인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 08. 14. peterbreak2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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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보다 두려운 편견과 혐오, 사회적 '포용' 필요할 때

센터와의 논의 끝에, 이번 아웃리치 동행에서는 거리노숙인들의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다수의 노숙인들은 자존감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설명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사진촬영을 허락하는 노숙인 중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남기는 일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1인 미디어가 넘쳐나면서 노숙인들의 무단으로 촬영, 방송하는 문제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독자와 광고를 위해 노숙인에 대한 혐오로 가득찬 방송을 죄책감 없이 남발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이들에 대한 편견도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노숙인들이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도움이 가장 필요합니다. 거리노숙인의 대부분이 가족관계가 무너진 경우가 많아, 동기부여가 될 또 다른 ‘커뮤니티’가 절대적이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노숙인을 ‘기피’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상황입니다.

서울시가 마련한 정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숙인 외에도 많은 취약계층이 있는 만큼, 이들에게 재원을 집중할수도 없습니다. 대안은 우리 사회가 노숙인을 능동적으로 포용하는 것이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박 팀장은 말합니다. 노숙인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빈곤’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노숙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행태에 대한 지적입니다. 생수 한통으로 폭염을 버틴 노숙인들. 하지만 그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혐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peterbreak2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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